<한겨레>는 창간 35돌을 맞아 신뢰를 회복하고 독자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한 길에 나선다. 사진은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열린편집위원의 눈] 심창식 | <한겨레:온> 편집위원
<한겨레>가 잠시 자만했던 걸까. 편집국 간부와 김만배씨의 돈거래 사건은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자아냈다. 보수층과 보수 언론은 쾌재를 불렀고 한겨레는 큰 위기에 몰렸다. 한겨레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투명하게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신속히 수립한 것은 ‘과연 한겨레답구나’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전 직원이 한마음이 되어 창간 정신을 되새기며 한겨레가 재도약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 출신들이 핵심 권력기관의 요직을 장악하며 검찰 공화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자 한겨레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태동시키기 위해 국민의 열망으로 탄생한 한겨레는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작금의 시기에 민주·민족·민생을 지켜달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비상한 각오로 옷깃을 여며야 한다.
현재 한겨레는 3대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내부 리스크이다. 중견 간부들과 젊은 기자들의 세대 간극이 그것이다. 중견 간부들은 창간 정신의 실제적 적용을 위해 젊은 기자들과의 소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독자와의 시각 차이 리스크이다. 독자들은 보수 정부에 대해서는 ‘뜨거운 전사의 피’를 요구하고 진보 정부에 대해서는 ‘온건한 옹호자’가 될 것을 기대하는 반면, 한겨레는 보수 정부나 진보 정부 둘 다에 대해서 진실만을 보도하는 ‘냉철하고 차가운 피’를 지니고 싶어 하며 진영논리에 갇히게 될 것을 경계한다. 모든 기사를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는 없겠지만 독자 없는 신문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셋째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급변에 따른 경영 리스크이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포털과 유튜브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겨레는 어떻게 미래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고도화로 챗지피티(ChatGPT)가 신문의 자리를 차지하는 날이 오지는 않겠지만 어떤 변화가 오든 한겨레는 디지털 영토에서 필사적으로 진지를 구축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한에 대하여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일관성을 부여’해야 하는 일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정치경제적 상황이 그리 한가롭지 않다.
법치라는 미명하에 명실공히 검찰 공화국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겨레는 역사상 유례없는 검찰 공화국에 맞서 국민들에게 희망의 빛줄기를 찾아주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창간 35주년을 맞아 한겨레는 세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윤리와 보도 신뢰를 회복하고, 독자·주주·후원회원에게 더 다가가며, 한국 사회의 의제 설정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한겨레다운 비전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방향 제시이다.
시민들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한 원인 분석과 해법 모색에 갈급해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비롯해 기후위기와 한반도 평화 이슈들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사회가 상호존중과 상생의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한겨레가 앞장서야 한다.
또한 권력 감시와 비판에 머물지 말고, 한민족의 기상을 드높이고 지정학적 갈등의 파고를 넘어설 역사적 전환점을 찾기 위한 의제를 발굴하는 데 힘써야 한다. 한겨레의 창간 정신에는 겨레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래서 신문 이름도 한겨레가 아닌가. 겨레의 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통일과 공존 그리고 평화와 번영이다. 겨레의 염원으로 탄생한 언론으로서의 시대적 사명과 소임을 다하기 위한 한겨레의 역할은 결코 과소 평가되어서도 안 되고, 단 한 순간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7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