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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희망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면

등록 2023-05-29 18:52수정 2023-05-30 02:37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편집국에서] 이정애 | 스페셜콘텐츠부장

기후변화가 메이저리그 홈런 수 늘렸다’, ‘기후변화, 비만과 관련 있다’.

포털에서 ‘많이 읽은 뉴스’ 기사 목록을 살펴보다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5월 한반도에 찾아온 이례적 고온이나 전세계를 강타한 열파(동남아시아)·가뭄(아르헨티나)·폭우·홍수(이탈리아), 그리고 서울 도심에 나타난 마른나무흰개미나 동양하루살이의 증식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메이저리거의 홈런 수 변화도, 불어난 내 뱃살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모든 변화의 근본에 기후변화가 있다니, 편집국을 아예 기후변화국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 우스갯소리를 나눴다. ‘다뤄야 할 현안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하소연 절반, 위태로운 인류 운명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했는지 ‘날리면’이라고 했는지 따위가 ‘뭣이 중헌디’ 싶은 맘 절반인 상태에서 나온 농담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2도 오를 경우,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토지가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대로라면 2027년(불과 4년 앞!)까지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기온이 1.5도 상승할 확률이 66%’라고 경고했다. 1.2도가 넘는 순간부터 상승세는 가팔라지고 0.1도 상승할 때마다 약 1억4천만명씩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단다. 기후위기의 ‘증거’ 하나를 더 얹는 방식의 보도로 세상이 꿈쩍이나 할까. 기후위기의 중대성을 알리기 위해선 그날의 우스갯소리를 그저 ‘넝담!’ 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건,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건,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내 생활 패턴을 바꿀 만큼 사람들의 맘이 급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1월 나온 독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 여론조사 결과는 사람들의 이런 모순된 감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사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 확장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59%였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 ‘일시적으로 석탄발전소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옳은 정책’이라는 쪽에 동의한 사람이 60%로 그와 비슷했다. 우리나라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늦봄 더위에 이어 평년보다 덥고 습한 여름이 올 것이라는 날씨 예보가 나오면 ‘반짝’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미루고 미루다 찔끔 올린 전기·가스요금을 두고선 어떻게 하면 덜 쓸까 궁리하기보다 ‘냉방비 폭탄’을 걱정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1월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지난해 11월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 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이름마저 비장한 기후단체 ‘마지막 세대’(Letzte Generataion)의 ‘실력행사’에 눈길이 간 건 이 때문이다.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를 자처한 이들은 ‘화석연료 사용 전면중단’을 촉구하며, 몇년째 독일 시내 주요 도로에 접착제를 바른 손을 고정시켜 차량 통행을 막는 과격 시위를 벌여왔다. ‘쇼킹’한 이벤트로 주목을 끌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논쟁을 촉발할 수만 있다면 족하다는 절박함이 이들의 알리바이다. 지난 24일 독일 검찰과 경찰이 이들의 거점을 압수수색했는데, 하다 하다 ‘이탈리아와 독일을 잇는 송유관을 파괴할 계획’을 세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경험상 이런 과격한 행동은 박수보다 야유를 받기 십상이다. 비교적 우호적이던 ‘보통’ 시민들마저 등 돌리게 만들 가능성이 더 크 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무조건 ‘미치광이 과격분자’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미치광이가 선각자는 아니지만, 남들보다 예민하게 위기를 감지하고 세상을 바꾸려던 선각자들이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사례가 종종 있지 않았나. 만일 이들도 그런 선각자라면…?

“희망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 문득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포스터에 적혀 있던 카피가 떠올랐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한 22세기를 다뤘는데, 누런 모래 먼지 날리는 황폐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탓에 기후위기에 관한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까운 미래 어느 날 ‘그때 그 미친놈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어’ 이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박한 외침에 좀 더 귀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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