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2세션을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5월19~21일 주요 7개국(G7) 도쿄 정상회의에 이어 29일 열린 ‘2023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1월11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고, 정부는 12월28일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로 이를 공식화했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 상징어인 ‘인도·태평양’을 보고서 제목에 그대로 가져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미-일 동맹 강화에 올인하는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인·태 전략에 전적으로 편승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인·태 전략의 전제와 주축은 여전히 모호할 뿐 아니라, 오히려 구멍이 나고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중국 포위와 봉쇄에서 인도가 가세한 점이다. ‘쿼드’(Quad)는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인도의 ‘4자 안보대화’로 구체화됐다. 미국은 인도양에서 군사·경제적 영향력 확장을 바란다. 이를 잘 아는 인도는 쿼드를 통해 미국의 지원을 챙기면서도, 중국과의 대결에는 엄정한 선을 긋고 있다.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전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미국이 인·태 전략의 한 축으로 지난해 9월 영국·호주와 오커스 동맹을 체결하자, 하르시 바르단 당시 인도 외교부 부장관은 그 조약이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전략적 동맹’이라며 “쿼드와는 상관없고, 쿼드 기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언론들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겨냥한 오커스가 쿼드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 동시에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주는 것에 대한 불쾌감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포린 어페어스>에서는 최근 ‘인도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도박―뉴델리는 베이징에 대항하는 워싱턴의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는 기고가 화제였다. 2000년대에 조지 부시 행정부가 원전 기술 제공 등을 통해 미국-인도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개선할 때 참가했던 인도 출신의 애슐리 텔리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이 기고에서 “인도는 워싱턴과의 협력이 (인도에) 가져다줄 편익을 평가하나, 그 대가로 어떤 위기 국면에서도 미국을 물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인·태 전략에서 미국이 지향하는 대중국 합동작전을 의미하는 ‘상호작전’이라는 개념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고 뒤 텔레비전에서 텔리스와 토론한 수브라마니암 자이샹카르 인도 외교장관도 “동맹을 찾아 전세계를 뒤지는 미국 같은 나라와 (인도)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호주와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이지만 인도는 단지 동반자 관계다. 미국-인도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르잔 타라포레 스탠퍼드대 연구학자도 ‘인도·태평양에서 최선의 미국 도박’이라는 제목의 반론 기고에서 “미국은 인도양에서 인도의 군사·경제적 능력 신장에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최선”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인도는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는커녕 러시아와의 교역을 확대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오히려 인도의 심기를 살폈다. 현재 미국과 인도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태 전략은 인도보다 중동에서 구멍이 나고 있다. 미국에 이 전략의 전제는 중동 안정이다. 지난 3월 중국이 중재한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국교정상화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동 지정학의 격변을 보여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사우디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석유 감산을 주도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확대했다. 미 동맹국이나 탈미 독자행보를 선도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최근 재집권에 성공했다.
미국이 인·태에서 대중 봉쇄망을 치는 사이 중-러는 중동에서 치고 나오는 모양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미 패권에 최대 위협이라고 지적한 중-러-이란 연대가 뚜렷해진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7일 사우디를 전격 방문해, 미국과 인도·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연합 간 협의체인 ‘I2U2’를 가동해, 동부 지중해와 페르시아만을 잇는 철도망 등 대형 인프라 건설을 제안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6월 사우디를 방문한다. 미국은 다시 중동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처지다. 중동에서 중-러-이란을 막아내려던 사우디 등 수니파 보수 왕정과 이스라엘의 스크럼 짜기가 무너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회사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미국의 대중 대결이 빅테크 산업을 망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미 재계에서도 인·태 전략 부작용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인·태 전략에 대한 우려는 인도-중동-미국 재계 등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와 달리 인·태 전략에 올인하고 있다. 대중 무역적자 등 한국을 향해 밀려오는 파고가 더 거세질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