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성균관대 축제 공연에서 큰 호응을 얻은 가수 김완선. 유튜브 갈무리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얼마 전 가수 김완선의 한 대학 축제 공연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우정의 무대> 공연은 많이 했지만 대학 축제는 처음이라니 태고적에 활동한 가수로 느껴지는데 세상에, ‘씹어먹었다’는 표현은 이날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다. 김완선이 부르는 ‘삐에로는 우릴 보며 웃지’가 한창 유행하던 1990년 태어난 내 조카가 삼십대 중반이니 영상에서 열광하며 떼창을 부른 대학생들은 이 노래가 나왔을 당시 지구에 정착하게 될 미래를 상상조차 못하는 외계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상에는 댓글도 많이 달렸는데 그야말로 세대 통합의 장이다. “언니 우리 엄마랑 동갑”이라는 팬부터 “삼십년 전에 팬레터 답장받고 울었던” 팬까지 모였는데, 이견 없이 명곡과 명가수에 대한 대동단결의 열광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정녕 ‘꼰대’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기도 싫다거나, 엠제트(MZ)세대와는 말 안 섞는 게 상책이라고 말하는 이들로 홍해 바다처럼 갈린 대한민국의 풍경이란 말인가.
논쟁은 엉뚱한 곳에서 벌어졌다. 내가 종종 들어가는 주부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김완선을 보면 50대도 한창의 나이”라고 썼는데, 이에 공감하는 글도 적지 않았지만 “정신승리”라는 조롱부터 “평생 지독하게 관리한 사람만 가능한 거다”는 부러움, “오십 넘으니 안아픈 데가 없다”는 신세한탄까지 뜻밖에 부정적인 글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오적오’(오십대의 적은 오십대)인 건가.
온라인상의 두곳에서 벌어진 예상 밖 풍경을 보면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관해 여전히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그럴듯한 말 안에 어떤 회피와 손쉬운 타협 같은 걸 밀어넣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의심 말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김완선의 공연보다 더 놀라웠던 건 성능경 작가의 전시기사였다. 백발이 성성한 팔순 작가가 빨간 작업모에 빨간 장화, 삼각팬티 차림으로 카메라에 선 것도 놀랍지만 ‘노인네의 정신 나간 행동’처럼 보일 법한 이 장면이 너무 신선했기 때문이다. 평생 전위미술을 실험해온 작가의 몸에 밴 자유로움과 파격이 늙은 몸뚱이를 하나의 오브제로 만든 거다. 성능경 작가는 그 전위성 때문에 국내 제도권 미술계에서 계속 냉대받으며 1990년대에는 공황장애까지 겪는 등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올가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초대받으며 한국으로 ‘역수출’된 ‘올해 미술판에서 가장 핫한 80대 신예 원로작가’(
한겨레 5월25일치 기사)라고 한다.
‘우공이산’, ‘마부작침’ 따위의 진부한 교훈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만약 성능경 작가가 공황장애가 왔을 때 창작을 그만뒀다면, 후학양성이라는 ‘어른의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나이주의’가 공고한 우리 사회에서는 이게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일 터이다. 적당한 시기에 현역에서 물러나 후학들을 가르치고, 관리자가 되어 조직을 이끌고 나라를 걱정하며 젊은 세대를 개탄하는.
올해 환갑을 맞은 동갑 친구 이권우(도서평론가), 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와 전국의 작은 책방과 도서관을 다니며 토크콘서트를 하는 천문학자 이명현은 얼마 전 교육방송(EBS) 프로그램 <어른 도감>에 나와서 “어른의 역할은 죽는 거야”라고 말했다. 황당하면서도 통쾌했다. 물론 그의 설명은 사람이 아닌 별의 생애주기에 관한 것으로 “생을 다한 별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거기서 생성된 원소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별이 생긴다”는 얘기였다. 이 말을 사람의 생으로 번역한다면 살아생전 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죽으면, 그것만으로 다음 세대의 토양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훌륭한 어른이 되려고 하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말이다.
엠제트세대가 어떻다는 둥, 세대 간 이해를 위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둥, 그런 말처럼 쓰잘데기없는 말도 없다. 좋은 어른이 되는 법에 관한 책 100권 읽고 실천하는 것보다 김완선의 완벽했던 무대가 세대 간의 이질감을 없애는데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대학 축제 공연이 눈으로 확인시켜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 들어가면서 노력해야 할 건 김완선이나 성능경, 그리고 올해 87살의 나이로 칸영화제에 새 연출작을 들고 온 켄 로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들이 보여준 것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이나 제대로 하는 것 같다. 거기서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리는 건 다음 세대의 몫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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