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에릭 홉스봄(1917~2012)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집트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1917년 6월9일 태어났다고 알려졌다(그의 전기를 쓴 리처드 에번스는 하루 앞선 6월8일이 실제 생일이라고 했다). 이집트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외가가 있던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겨갔다. 살림이 기울고 가난을 겪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었다. 독일 베를린의 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책을 많이 읽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읽고 좌파에 공감했다. 1930년 무렵부터 히틀러에 맞서는 독일 공산당의 운동에 참여했다.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일은 그에게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았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이 거세지기 직전 영국으로 옮겨갔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모르는 것 없는 학생”으로 통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으로 복무했다. 홉스봄을 골칫거리 좌파 부사관으로 여긴 영국 정보부는 그를 뒷조사했다. 영국 공산당도 그를 말썽분자로 생각했다. 소련을 추종하는 당의 방침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 냉전이 시작됐고, 보수적인 학계는 좌파 지식인 홉스봄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런던대 버크벡 칼리지 교수가 된 홉스봄은 세계 역사를 나라 단위가 아니라 전체사적인 시각에서 접근했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3부작은 여러 나라에서 학술적으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좌파이면서도 누릴 것은 누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때로는 난처해했고 때로는 “가라앉는 배라도 일등석에 타는 편이 낫다”며 농담으로 넘기기도 했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했다. 민족주의를 거부했고 68혁명에 부정적이었다. 그람시를 좋아했으나 알튀세르에 동의하지 않았다.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고, 여성주의와 관련해 시대에 뒤떨어진 태도를 취했다.
소련 공산당을 싫어했는데, 소련이 멸망했을 때는 “앞으로 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렇게 됐다). 마지막까지 좌파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2012년 95살 나이로 숨졌다. 장례식에서는 “참으로 나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구나”라는 브레히트의 시구절이 낭독됐다. 카를 마르크스의 옆자리에 묻혔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