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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에서 언론이 할 일

등록 2023-06-12 19:05수정 2023-06-13 02:39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서울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오염수 해양방류를 규탄하며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서울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오염수 해양방류를 규탄하며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시민편집인의 눈]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영국 <비비시>(BBC)가 라디오드라마 형식으로 방송 중인 다큐멘터리 <후쿠시마>는 2011년 3월 원전 사고가 ‘인재’였음을 보여준다. 도쿄전력 수뇌부는 2008년 내부 연구자가 “규모 9의 강진으로 12~15m 쓰나미(지진해일)가 원전을 덮칠 가능성이 있으니 방파제를 높여야 한다”고 보고하자 코웃음을 쳤다. 그들이 무시한 시나리오는 현실이 됐고, 전원이 물에 잠겨 정전되면서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났다. 도쿄전력 수뇌부는 경제적 손실을 걱정해 노심 냉각을 위한 바닷물 주입에 반대하다 빠른 수습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이 회사는 2018년 삼중수소 외 방사성물질이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다 걸러진다고 했지만, 처리한 오염수 70%에 기준 이상 방사성물질이 남은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오염수 문제는 도쿄전력의 이런 오판·거짓말 전력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국내 원자력계와 일부 정치인은 도쿄전력을 맹신하는 듯하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 오염수 속 64종 방사성물질을 다핵종제거설비로 거듭 거르면, 삼중수소만 남고 모두 기준치 이하로 제거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를 검증하니 믿을 수 있다. 둘째, 삼중수소는 식수 기준 이하로 희석해 배출하며, 엄청난 양의 바닷물과 섞이니 농도는 무시할 정도가 된다. 셋째, 삼중수소가 건강에 피해를 끼친다는 연구는 없다. 넷째, 후쿠시마 사고 직후 고농도 오염수가 대량 배출됐지만, 12년간 한국 해역의 방사성물질 농도는 변화가 없었다. 다섯째, 후쿠시마에서 방류될 연간 삼중수소량은 한국 원전에서 방출되는 삼중수소량보다 적다. 여섯째, 미국 등 다른 나라는 괜찮다고 하는데 한국만 난리다.

반면 국내외 독립적 전문가들은 오염수의 환경·보건 영향을 우려한다.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위임으로 연구 중인 핵물리학자 페렌츠 달노키베레스, 핵공학자 아르준 마키자니, 생물학자 티머시 무소와 국내 산업보건 의학자 백도명·김익중, 핵공학자 서균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 오염수에는 발표된 것보다 많은 종류의 방사성물질이 있으며, 다핵종제거설비의 처리 능력 부족과 고장 등으로 삼중수소 외 다른 핵종이 함께 방류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전 육성’이 목적이라 이런 문제를 밝혀낼 의지가 없다. 둘째, 세슘, 스트론튬 등이 섞인 오염수가 선박 평형수로 곧장 한국 바다에 올 수 있고, 물고기 먹이사슬 등을 통해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셋째, 삼중수소가 유기결합삼중수소(OBT)로 체내 흡수되면 암과 유전병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있다. 넷째, 후쿠시마 사고 직후 동해안 퇴적층에서 세슘 수치가 급증했던 기록이 있다. 방사성물질 농도 변화를 제대로 측정하려면 표본을 많이 늘려야 한다. 다섯째, 정상 가동하는 한국 원전 배출수를 사고 원전 오염수와 비교할 수 없으나, 한국 원전의 삼중수소도 문제다. 원전 지역 주민 갑상샘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의 몇배나 돼,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집단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이미 배출된 방사성물질에 양을 더한다는 점, 폐로 상황에 따라 30년 넘게 계속 방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여섯째, 미국 정부는 핵실험 등의 원죄와 자국 원전 문제로 외면하고 있으나, 18개 태평양 도서국과 중국·홍콩·러시아·독일 등은 방류에 반대한다.

언론은 이렇게 상반되는 주장을 최대한 검증해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오염수 문제는 특히 기후환경, 에너지, 외교, 과학 등 여러 분야가 협업해 ‘사안의 전모’를 보여줘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많은 언론은 각각의 목소리를 ‘중계’하는 데 그치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김소연·김정수 기자 등 관련 취재진의 적극적 취재와 충실한 보도가 기대감을 높인다. 다만 협업과 멀티미디어로 ‘입체적 전모’를 보여주는 데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대안에 관한 보도도 더 필요하다. 초대형 탱크에 장기 저장이나 콘크리트 매립 등 ‘육상 보관’ 방법을 해외 사례 등을 통해 구체화하고, 국제해양법재판소 잠정 조치 등 한국 정부 선택지도 상세히 알려주면 좋겠다.

환경·보건에 관한 위험은 ‘사전 예방 원칙’에 따라 미리 대처하는 것이 옳다. 모든 언론은 ‘여러 전문가가 피해를 경고하는 오염수 방류를 방치해도 되는지’ 정부에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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