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재명 | 기획부국장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신발을 벗지 않고 거실에 들어가거나, 종업원에게 꼬박꼬박 팁을 주는 관습이 미국인에겐 당연하지만 우리에겐 그렇지 않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언제든 술을 살 수 있는 한국인에게 정부가 허가한 주류 판매소에서 그것도 평일 낮에만 구매하라고 하면 폭동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웨덴이나 핀란드인들에게 이런 제약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신분증 제도도 그런 사례다. 우리 국민은 성인이 되면 예외 없이 열 손가락 지문과 사진을 주민센터에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강제로 부여된 고유식별번호, 즉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이름, 생년월일, 현재 거주지, 지문 등이 포함된 주민등록증(주민증)을 발급받게 된다.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은 신분증에 가장 많은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나라다. 거기에 적힌 주민등록번호는 나를 식별하고 인증하는 ‘인간 바코드’처럼 활용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각종 행정서비스는 물론 온라인 회원 가입, 휴대전화 개통도 불가능하다.
우리의 대척점에 영국이 있다. 이 나라에는 아예 주민등록제도나 국가가 발급하는 신분증이 없다. 출생신고 외엔 내가 어디에 살고 있고, 어디로 이사했는지 신고할 의무가 없다. 당연히 주민등록번호 같은 개인식별번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사진도 수집하지 않는다. 하물며 개인 지문은 말할 것도 없다. 범죄자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지문을 채취하지 않는다. 신분증이 없어도 여권 발급이나 투표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선거 날엔 미리 유권자 등록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용지를 건네준다. 여권을 받으려면 같은 동네에 사는 유력 인물의 신원보증만 거치면 된다. 한국인이 보기엔 황당하고 아연할 것이다. 그래도 영국은 별문제 없이 굴러간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 영국에 뿌리를 둔 나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왜 그럴까? 이들에겐 국가나 공무원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정서가 깔렸다. 국가에 너무 많은 정보나 권한을 주면 필연적으로 국민을 통제하거나 일탈할 위험성이 있다는 의심에서 비롯된다.
어떤 법률이나 제도, 문화는 특정한 시대적 분위기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앞서 존재했던 환경과 조건이 바뀌었음에도 어떤 제도는 관성 때문에 그대로 존속하기도 한다. 이른바 ‘경로 의존성’이다. 주민등록제도는 사실상 국민 감시와 통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68년 북한의 청와대 기습 사건,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으로 남북, 북-미 간 긴장이 높아지고, 한-일 국교 정상화 등으로 정권에 대한 반발이 확산하자 박정희 정권이 간첩과 ‘불순분자’를 가려내겠다며 단행한 조처였다. 사생활 보호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괴물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살아남았고 이젠 쓰임새가 워낙 넓어 없애자는 주장이 되레 무모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다. 그렇다고 주민등록제도의 기본권 침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정부가 지난 7일 주민증에도 유효기간을 둬 일정 기한이 지나면 재발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나이가 들어 사진과 실제 얼굴이 달라 보이거나 성형 등으로 본인 확인이 어려운 문제를 해소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운전면허증, 여권처럼 주민증도 유효기간이 지나면 효력을 잃게 된다. 대체 신분증이 있는 이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혹시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하게 된다면, 주민증 없이는 투표할 수 없다. 국민투표법은 여전히 주민증만을 본인 확인 수단으로 인정한다. 갱신 거부에 따른 불이익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주민증은 취약한 보안과 분실이나 도용으로 인한 피해 탓에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 성인의 75%가 운전면허증을 갖게 되면서 지갑에서 밀려나 장롱 속에 방치된 지도 오래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주민증 갱신 의무화를 추진하는 건 국민의 얼굴 정보를 업데이트하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 역시 천문학적 규모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다지 쓸모없는 물건을 큰돈을 써서 주기적으로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정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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