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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업 사회’로의 쏠림을 경계한다 [편집국에서]

등록 2023-06-21 19:06수정 2023-06-22 02:07

2020년 11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상생적 기업생태계와 재벌개혁의 방향’을 주제로 열린 한국개발연구원(KDI)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1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상생적 기업생태계와 재벌개혁의 방향’을 주제로 열린 한국개발연구원(KDI)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재벌은 성장의 견인차이면서도 위험(리스크) 요인이었다. 문어발 경영과 총수 중심 지배구조에 내재해 있던 위험은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극적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생존한 재벌은 복잡한 지배구조를 투명화(지주회사 전환)하기 시작했으며 사업구조도 선택과 집중을 거쳐 다듬어 갔다. 재벌의 또 다른 상징인 ‘과잉 차입’도 눈에 띄게 해소됐다.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국제통화기금의 권고와 정치권·정부의 개혁 드라이브, 시민사회·언론의 견제와 감시 활동 등 ‘외풍’이 적잖게 기여했다. 물론 2008년 삼성 비자금 사태는 위기 뒤 10년간 쇄신이 말짱 도루묵 아니었냐라는 회의를 남기긴 했다.

2010년 전후로 위기론이 다시 한번 불거졌다. 크게 두가지 배경이 있었다. 하나는 빵집·카페·엠아르오(MRO: 문구류 등 소모성 자재 구매 사업) 논란에서 보듯 골목상권에까지 재벌들이 치고 나온 현상이었다.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 밥그릇까지 뺏는 탐욕이란 비판 여론은 물론 반도체·텔레비전(TV)·디스플레이·조선·철강·자동차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새 먹거리 창출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기업가 정신 실종’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맘때다.

이런 우려는 재벌 가문의 생물학적 승계와 맞물리면서 좀 더 깊어졌다. 안온한 환경 속에 유학물을 먹고 자란 3·4세들이 창업세대가 천신만고 끝에 일군 기적을 이어갈지 불안하게 보는 이들이 많았다. 창업 이후 세대들이 연루된 마약·폭행·갑질·주식불공정거래 사건 등이 때마침 잇따르면서 이런 의구심은 더 커졌다. 창업세대와 호흡을 함께하며 기업을 일궈온 ‘총수 가신그룹’ 사이에선 철부지에게 미래를 맡겨도 되느냐는 자조가 나왔다.

다시 10년 남짓 흐른 오늘날 돌이켜 보면, 이런 불안은 어느 정도 기우였던 것 같다. 현재 주력산업으로 떠오른 2차전지와 전기차, 시스템반도체, 바이오의약품 등 품목은 10년 전엔 수출·내수 통계에서 잡히지 않던 새로운 것들이다. 2010년 3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사면 뒤 경영에 복귀하며 “지금이 진짜 위기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경고한 것을 그 후예들이 귀담아들은 것일까. 감히 넘보지 못했던 일본 도요타도 애먹는 전기차 전환이나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 제조대국에서도 의미 있는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한 배터리 업체가 거의 없는 상황 등을 살펴보면, 창업 후 세대들이 이룬 성과들을 낮춰 보기는 어렵다. 1990년~2000년대 ‘베스트 팔로어’(뛰어난 추격자)로서 한국 재벌을 살핀 연구가 쏟아진 것처럼 이젠 ‘퍼스트 무버’(선도자)로서의 한국 재벌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연구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런 성취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에선 새로운 불안감이 엄습한다. 재벌의 일탈을 막아주는 구실을 해야 할 정치·관료·시민사회·언론은 한층 취약해졌다. ‘젊은’ 관료·기자들은 썰물처럼 본업을 버리고 기업으로 존재를 이전하고, 야당은 철 지난 ‘사주 체제 재조명’에 부산 떤다. 전 국민 투자자(주주) 시대가 열리며 ‘돈’의 이해관계 너머에 있어야 하는 시민사회의 기반도 상당히 흔들렸다. 이는 한국 사회가 온전한 ‘기업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생각한다. 그 기업사회의 주인공은 재벌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가속화하는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뒤이은 미-중 패권 전쟁이란 외부 여건도 기업사회로의 이행을 부채질한다. ‘기업의 이익을 곧 우리의 이익’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이런 환경은 20여년 동안 한국 사회가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차곡차곡 쌓아온 재벌 감시망을 허물어뜨리며,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불평등 완화를 향한 열정까지도 식힌다. ‘상생경제’ ‘동반성장’ 등과 같은 정책 어젠다들은 철 지난 이야기처럼 치부된다.

이런 기업사회로의 쏠림은 재벌과 경제생태계에 또 다른 리스크가 자라나게 하는 토양 아닐까. 창업 후 세대의 분투만큼이나 한층 더 커진 우리 사회의 운동장 기울기를 되돌리려는 분투도 계속돼야 한국 경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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