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출한 짐을 자루에 넣은 채 여성 최초로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에 성공한 엠마 게이트우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김은형ㅣ문화부 선임기자
지난 주말에도 가출했다. 몇년 전 애가 사춘기가 되면 엄마가 독서실 이용권을 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집구석에서 게임이나 유튜브로 시간을 때우며 엄마의 잔소리 한마디에 열마디로 바락바락 대드는 꼴을 보기 싫어서 엄마가 집 나가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온다는 건데 이제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천불을 식히기 위해 오전부터 집을 뛰쳐나와야 했다.
녹음이 우거진 서울시내 산자락을 두세시간 걷다 보니 마음이 좀 풀렸다. 이래서 걷기, 걷기 하는구먼, 나도 본격적으로 걷기 수행을 해볼까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와 오래전에 선물받은 책을 펴들었다.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할머니가 등산하는, 웃기는 이야기라고만 듣고 빌 브라이슨의 여성 버전 같은 책인가 했더니 이건 노년의 새로운 도전에 관한 위대한 기록이자, 비범한 지침서였다.
주인공인 엠마 게이트우드는 미국의 대표적 트레킹코스 중 하나인 동부 애팔래치아 트레일 3300㎞를 여성 최초로 완주한 역사적 인물이다. 그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애팔래치아 트레일에는 이름을 딴 구간도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이름으로 써도 손색없는 인물인데, 책 표지를 장식한 그의 아웃도어는 개척자나 탐험가와는 거리가 먼 텃밭 농사복장이다. 좋게 봐도 동네 뒷산에 야생딸기 따러 가는 할머니 행색이다. 트레킹의 기본인 신발조차 등산화가 아닌 얇은 헝겊 운동화를 신고 도전에 나섰다. 도중에 6번이나 새 신발을 사야 했지만 말이다.
신발보다 놀라운 건 그가 들고 다닌 가방이다. 50년대 이야기지만 그때도 일주일 이상 길을 걷는 이들의 배낭은 20㎏이 넘는 것으로 책에 나온다. 그런데 게이트우드는 집에서 남는 천으로 자루를 만들어 들고 다녔다. 침낭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고 욕실 방수커튼을 비옷으로 썼다. 최소한의 짐만 챙긴 가볍고 허름한 자루를 메고 5개월을 걸어 이 길을 종주했다. 요즘 유행하는 ‘초경량 여행’의 시조인 셈이다. 이런 차림으로 백발이 산발이 되도록 홀로 수풀을 헤치고 다니던 그를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이랬다. “숲속에서 별의별 걸 다 봤는데 그중에서 할머니가 가장 이상해요.”
이 정도라면 젊은 시절부터 등산을 밥 먹듯이 하면서 체력을 단련한 게 아닐까 싶은데, 그가 트레킹이라는 걸 처음 시도한 게 예순여섯살이었다. 평생 열한명 아이를 낳아 키우고 살림하면서 폭력적인 남편의 종처럼 농장일까지 하느라 예순이 넘어서야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 날 병원 대기실에서 본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기사가 증손자까지 본 할머니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예순여섯의 첫 도전은 도중하차해야 했지만 이듬해 성공했다. 그는 훗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그때 내 나이 비록 예순 하고도 여섯이었지만 나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이 여정을 통해 유명인이 되면서 왜 도전에 나섰는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지만 똑 부러지게 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머뭇거리다가 “그냥 걷는 게 그냥 좋아서”라거나 때로는 “언덕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럴싸한 이유가 없었던 거다. 여기에 인생 후반기 도전의 정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태어났으니까 살아감에도 목적과 명분에 매달려 산다. 입시와 취업이라는 주어진 목표가 사라진 뒤에도 직업적 성취, 자아실현, 가족부양, 사회기여 같은 명분과 목적을 끊임없이 부여한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태어났으니 살아간다는 생각만으로 견디기에는 권태롭고 버거운 삶이다. 하지만 이런 의무나 목적의식은 중년을 지나면서 주변에서 박탈하든 스스로 벗어나든 점차 약화한다. 그때 비어가는 마음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 인생 후반기의 도전이다.
게이트우드에게 ‘이 길을 종주하는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되겠다’ 따위 야심은 없었다. 그렇다면 복장이나 준비물부터 이렇게 허술하진 않았겠지. 어떤 구간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그는 “그야 물론 내리막길”이라고 답했다. 굳이 인정받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나이 들어서도 마라톤 완주든, 책을 쓰든, 남극 여행이든 꿈꿀 수 있다. 다만 중년 이후의 그 도전은 “좋아서” 이상의 이유가 나열되지 않기를 바란다. ‘노년의 기쁨’이라는 말에 아직 반신반의하지만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드러나는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이나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 아닐까.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 없는,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도전 같은 일 말이다. 우선은 사춘기 자식과의 공존을 위한 서울산 도장깨기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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