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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그러니 공을 차라

등록 2023-07-03 18:39수정 2023-07-04 13:58

한겨레 풋살팀 공좀하니 선수들이 지난 1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실내풋살장에서 열린 제1회 기자협회 여성회원 풋살대회 4위를 기록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 풋살팀 공좀하니 선수들이 지난 1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실내풋살장에서 열린 제1회 기자협회 여성회원 풋살대회 4위를 기록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편집국에서] 이주현 | 뉴스총괄

“딸들이여?”

아파트 아래층 사는 할머니가 엘리베이터에서 대뜸 물었다. 딸? 느닷없이 허를 찔려 허둥대는데 눈치 빠른 후배가 얼른 거들었다. “우리 언니예요, 큰언니! 헤헤헷.”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제1회 여성회원 풋살대회(7월1일)가 열리기 전날 밤이었다. 너무 떨려 잠을 못 잘 것 같다는 몇몇 후배와 우리 집에서 합숙하기로 한 터였다. 현타가 왔다. 지난 넉달 동안의 시간이 좌르륵 머릿속을 지나갔다. 아무리 할머니가 눈이 어둡다 쳐도, 나는 까마득히 어린 이 후배들과 함께 달려왔던 거다.

남성 기자들이 참여하는 기자협회 주최 축구대회는 올해로 49회를 맞는 관록 있는 행사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시간 잠자리가 날기 시작하면 회사 곳곳에서 축구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지난해 한겨레 축구팀이 8강에 올라갔을 때 뉴스룸을 달궜던 흥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기협 축구대회는 남성 회원들에게만 열려 있었고 여성들은 가끔씩 응원 부대로 함께할 뿐이었다.

우리를 위한 풋살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지난 2월 말이었다. 일을 마친 뒤 회사 앞 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후배들이 타사가 준비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그 당시 이런저런 궂은일들로 회사가 온통 무덤 같은 분위기였는데, 모처럼 반짝이는 후배들의 눈빛을 보니 마음이 동했다. “우리도 해보지 뭐.”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공 굴러가듯 점점 몸을 불려 20명 가까이 참여하는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최초 동을 뜬 나는 단장을 맡았고, 20세기 말 나랑 같이 한겨레에 입사한 동기가 감독을 맡았다. 이름은 인터넷 한겨레 ‘hani’ 이름을 따서 ‘공좀하니’로 정했다. 다들 처음 해보는 것이라 상대방의 실력은 물론 스스로의 실력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경쟁 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처절히 깨지고 난 3월의 어느 날, 위기론이 확산했다. 고등학교 때 풋살 선수로 활동했던 한겨레 남성 축구팀 회원을 삼고초려하여 코치로 모셨다.

3월3일 밤 첫 연습을 시작으로 4개월 동안 34번의 맹훈련이 이어졌다. 여성 풋살화 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선택지가 별로 없었고, 그마저도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연습하러 경기장에 가보면 여성 전용 화장실이 없거나 열악하기 일쑤였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축구는 차원이 달랐다. 공을 쫓아 순간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는 것은 자기 페이스에 맞춰 달리기나 등산을 하는 것보다 몇배의 힘이 필요했다. 격한 운동인 만큼 부상도 잦았다. 하지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함께 뛰고 나면 나의 한계, 너와 나를 규정짓던 테두리가 씻겨나가는, 흥분과 평화가 교차하는 기묘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경기 결과가 어땠냐 하면, 우리는 결국 골맛을 못 봤다. 다행히 두차례의 승부차기를 통해 예선리그전을 통과했고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뒤풀이에서 쏟아진 눈물은 승패 때문이 아니었다. 같이 공을 찬 그 멋진 경험을 고백하는 가슴 벅참이었다. 스포츠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이 단지 여자들의 취미 이슈를 넘어 새로운 풋살 문화를 만들어내고 사회적 울림으로까지 나아간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성별, 나이, 고정관념, 편견 등에 가로막혔던 기회를 찾아나가는 모험의 서사.

대회 다음날 출근을 했다. 사무실 책상엔 월요일치 기사 기획을 준비하며 적어놓고 간 키워드 메모가 수북했다. 서해 피살 사건, 태양광, 탈원전, 건폭몰이, 건설노조, 보조금, 킬러 문항, 사드, 이권 카르텔, 감사원, 국세청, 국정원, 경찰, 검찰, 특수부 정치, 정책의 범죄화, 악마화 정치, 막말 대결, 사정 통치, 반국가세력, 지지층 결집, 정치 실종 그리고 대통령….

기자 개인의 경험을 기사나 칼럼으로 쓰면 ‘이런 건 일기에나 쓰라’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하지만 이는 일기가 아니다. 아니, 중요한 말은 반드시 일기장에도 적어놔야 한다.

‘퇴행의 시대’를 견디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총기와 패기를 잃지 않고 나아가려면 심신의 굳건함이 필요하다. 나의 힘을 믿고, ‘곁’에 있는 이들의 힘을 믿고 함께 가야 한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필요하다. 관계의 회복이 절실하다. 그러니 당신도 공을 차라.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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