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기이한 전경련의 부활 조짐

등록 2023-08-02 18:01수정 2023-08-03 02:41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6월22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한 호텔에서 열린 동행 경제인 만찬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격려사에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6월22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한 호텔에서 열린 동행 경제인 만찬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격려사에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김경락

경제산업부장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유폐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르면 이달 중 부활한다. 전경련에서 적을 판 4대 재벌 그룹이 5년여 만에 재가입에 무게를 실어 내부 논의 중이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집단적 의사를 밝히듯 어느 이해관계인이나 집단을 구성하고 실력을 행사하는 건 민주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재벌이라고 해서 공통의 이해를 찾아 집단을 구성하려는 시도에 딴지 걸기 어렵다. 물론 그런 집단이 부정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법·제도를 아우르는 정책과 규칙에 반영하려 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경련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전경련은 ‘불법 로비’, ‘국정 농단 연루’란 음습한 기억을 국민에게 안겨주었고, 그 뒤 인고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나.

전경련 부활 시도가 의아스러운 건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다. 전경련은 60여년 전 재벌 ‘회장님들의 사적 모임’에 뿌리를 둔다. 회장은 ‘오너’(소유자)를 가리키는 말로, 월급쟁이 회장은 해당하지 않는다. 해방 전후의 창업주가 중심이다. 이 ‘회장님’은 복잡한 출자 고리로 연결된 ‘기업집단’(그룹)을 ‘회장 비서실’이나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의 이름이 붙은 보좌 조직을 매개로 이끌었다. ‘선단식 경영’의 정점에 ‘회장님’이 존재하는 체계인데, 상법이 정하고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국식 지배구조’로 미화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회장님’은 ‘등기임원’도 아니었다. 이런 기형적 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그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으며, 이후 하나둘 뼈를 깎는 구조개혁에 들어갔다. 엘지(LG)·에스케이(SK)·씨제이(CJ) 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게 그 예다. 이런 맥락에서 전경련은 개발 연대 시절 낙후된 산업·기업 질서를 토대로 꾸려진 이해집단이다.

4차 혁명 시대에도 이런 ‘회장님’들이 존재하는가. 상법과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 법·제도가 한층 촘촘해지면서 과거와 같이 ‘오너’란 이름으로 계열사 이해를 관장하는 회장님은 자칫 불법과 탈법의 경계선에 서게 됐다. 오너 즉 소유자라고 하지만 그룹 덩치가 불어나면서 지분율은 미미하다. 다양한 산업 영역에 포진하고 있는 계열사들의 의사결정에 특정인이 개입하는 것 자체가 실패의 위험을 높이기에, 상당 부분 핵심 의사결정은 ‘월급쟁이 계열사 대표’가 한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재벌 중, 과거와 같은 회장님 보좌 조직을 운영하고 이 조직을 통해 그룹 전반을 관장하는 곳이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는 외환위기 때 드러난 낙후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기업과 사회가 공들인 노력의 성과라면 성과라고 생각한다.

회장님이 사라진 그 자리를 이제 주주들이 꿰차고 있다. 자본시장이 성장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수 주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영향력도 강해졌다. 사모펀드나 연기금도 부쩍 목소리를 낸다. 과거처럼 회장님 마음대로 계열사를 이끌다간 주주총회에서 깨지거나 송사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대주주’, ‘기업집단 전체’, ‘개별 계열사’, ‘계열사별 주주’ 각각의 이해관계는 때론 충돌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사모펀드 엘리엇의 ‘투자자-국가 국제투자분쟁’ 소송으로 삼성이 적지 않은 배상금을 물어낸 것도 삼성물산 소수 주주인 엘리엇의 이해관계와 ‘그룹 지배력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이재용 회장의 이해관계가 갈등했기 때문이다. 최근 씨제이씨지브이(CJ CGV)의 유상증자 계획 발표 이후 계열사 주가가 동반 폭락한 것도 이런 이해관계 충돌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식거래에 나선 소수 주주들의 움직임이 있었던 까닭이다. 현대차·한진에서도 회장님이 시장에서 패퇴하거나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기업 운영의 실질과 형식, 구조는 물론 시장 환경도 전경련 전성기 때와 크게 달라졌다. 그룹 내 주요 계열사 이사회 추인을 받는 옹색한 재가입 논의 절차도 이런 달라진 환경을 보여준다. 발전적 해체를 모색해야 할 때 부활을 도모하는 전경련과 여기에 다시 참여하려는 4대 재벌이 의아하다. 시중에 떠도는 정부가 배후라는 설이 사실인가.

sp96@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파괴왕’ 윤석열 2년의 징비록 [아침햇발] 1.

‘파괴왕’ 윤석열 2년의 징비록 [아침햇발]

[사설] ‘변화’ 안 보인 윤 대통령, 총선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2.

[사설] ‘변화’ 안 보인 윤 대통령, 총선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사설] 윤 대통령, ‘소통 시늉’ 그치려 한다면 큰 패착 될 것 3.

[사설] 윤 대통령, ‘소통 시늉’ 그치려 한다면 큰 패착 될 것

‘삼체’를 보다가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4.

‘삼체’를 보다가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돈으로 출산율을 높인다? [뉴노멀-미래] 5.

돈으로 출산율을 높인다? [뉴노멀-미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