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해 5월1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종료와 함께 물러났다. 그 뒤론 청와대에서 근무한 기간보다 더 오래 공적 발언을 삼간 채 지냈다. “평소 정치인의 덕목 중 하나는 ‘거리두기’라고 생각해서”라고 했다. “몸담았던 지난 정부, 국회의원을 지낸 민주당, 늘 시끄러운 현실 정치판의 일들은 모두 애정과 미움의 대상이라,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렇게 한 발 떨어져 지내던 이 전 수석이 지난 11일 한겨레와 퇴임 후 첫 공식 인터뷰를 했다. 1년 남짓한 청와대 근무 경험을 살려 윤석열 대통령에겐 강한 지도자보다 유능한 관리자가 되길 권했다. “리더 자신이 뭐든 제일 잘 안다고 확신해서 절차를 무시할 때 문제가 생기고, 이는 더 큰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아치 브라운의 책(강한 리더라는 신화)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다. 민주당엔 “다수의석이란 칼을 오남용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며, 의회 절대다수당인 만큼 집권세력의 일원으로서 국정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은 현재와 같은 여야의 적대적 공존, ‘앤타이즘’(Anti-ism)이 지배하는 우리 정치의 실패를 가장 크게 걱정했다.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영국의 브렉시트 같은 국가 전체의 퇴행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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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수석 때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1년 조금 넘게 했는데, 행정부는 물론 의회와 사법부를 아울러 국가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메니즘을 내부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앞으로 개혁을 한다면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서 어떻게 풀어내야 하겠구나, 그런 그림은 좀 잡히는 것 같다. 정무수석에 임명된 뒤 춘추관에서 인사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가 되겠다’고 공언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많이 열려 있어서 그 약속을 실천하는 데 별 애로는 없었다. 다만, ‘관리’만 남은 정권 말기에 들어가 국정을 ‘기획’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점은 아쉽다.”
대통령 권력집중 과도…국정운영 코어그룹 없어 우왕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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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1년이 넘었다.
“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퇴영적이라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책임자로 선출된 사람이니 국정 운영의 변화는 어느 정도 용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출됐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선거 민주주의’가 부정되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비판, 문제제기 등에는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에서도 ‘좋은 대통령은 위대한 소통자’라고 한다. 그런 소통을 통한 리더십 확장에 소홀한 것 같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고, 국정운영의 ‘코어그룹’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예상 가능한 사태를 예방하지도 못하고, 무슨 일이 터지면 우왕좌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은 ‘강한 지도자’라는 신화 또는 미몽에서 벗어나 그 코어그룹의 관리자여야 한다. 강함 대신에 유능함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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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윤 대통령의 참모라면 어떤 의견을 내겠는가.
“윤 정부는 세 가지 취약점,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여소야대, 0.73%포인트 극소 격차 당선, 보수 진영의 협소화와 주도세력의 허약성 등 ‘구조적 취약점’이 있다. 이렇게 협소한 지지 기반을 확장하는 쪽으로 임기 초반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건의했을 것 같다. 그러려면 의회권력을 잡고 있는 야당과 협치를 더 적극적으로 하고, 국민과 소통 폭도 더 넓혀야 한다. 소수 여당이라도 대통령 지지율이 60~70% 나오면 야당이 함부로 못한다. 그 다음은 ‘국면적 취약점’인데, 여당의 무기력화다. ‘민의를 담는 그릇’을 너무 옥죄어 버리니까, 여당의 순기능이 위축돼 버렸다. 감세, 복지 축소 등에서 나타나듯 보수적인 재정 운영도 문제고. 세번째는 ‘이념적 취약성’이다. 극우 노선 채택, 과거 회귀 인사, 외교 축의 무리한 전환 등. 이 세가지가 합쳐지니까 내부적으로 굉장히 불안할 거라고 생각한다. 브레진스키(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식으로 말하자면, ‘메타스테빌리티’, 즉 ‘준안정성’ 상태로 보인다. 겉으로는 강하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어떤 계기나 충격이 주어지면 연쇄반응을 일으켜 곧 혼란이 벌어지는 상황을 말한다. 대통령이 강한 그립(장악력)으로 버텨내는 것 같은데, ‘저대로 가도 되나’ 그런 걱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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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준안정성’ 상태를 무너뜨릴 계기란, 예를 들면.
“정권 내부든 외부든, 어디서든 올 수 있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가 있겠고, 김영삼 대통령도 아들 문제, 디제이 대통령은 ‘옷로비’,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가 있었다. 정권의 내구력을 시험하는 문제들이 많이 생긴다. 윤 정부 들어 근래에 걱정하면서 보는 두 가지는 부산 엑스포 유치 운동과 잼버리다. 엑스포 유치 활동에 기업을 과도하게 동원하고 있다. 물론 잘해서 좋은 성과를 내야겠지만,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잼버리가 문제됐을 때 ‘용산’ 첫 반응이 ‘문재인 정부 때부터 추진해 온 일인데 준비를 소홀히 했다’였다. 심정적으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공식 반응으로 내보낸 건 잘못이다. 화장실, 폭염 대비 등을 보면서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예상보다 심각하구나’ 생각하게 됐다. 청와대 있을 때 느낀 것 중 하나가 대통령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일이 확확 달라진다는 점이다. 잼버리는 대통령의 관심사가 아니어서 저런 문제가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이번 잼버리처럼 4만~5만명이 모이는 행사면, ‘대통령 사안’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업무 시간의 80~90%는 행정부 수반 역할에 써야 한다, 말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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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을 당선인 시절에 만난 적이 있지 않나.
“정무수석 때, 별명이 ‘난돌이’였다. 난 들고 폴더 인사하며 축하 사절로 많이 다녀서.(웃음) 윤 당선인 뵀을 때 그런 말씀을 하더라. ‘야당하고 적극 소통하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해볼 거다’라고. 마음속에 진정성이 있었을 것이다. 근데, 현실에서 부닥치는 것들이 생기니 그렇게 못하는데, 지금이라도 먼저 (야당에) 손을 내밀면 좋겠다. 정부 여당이 권력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쪽이기 때문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맞다. 그렇게 했는데도 야당이 매몰차게 거절하고 무안을 주면, 국민들이 ‘당신 갈 길을 가라’고 동의해주지 않겠나. 그 전에 해야 할 것을 너무 안 한 채 힘으로 누르려고만 하면 국민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여소야대 정권, ‘수사·감사·조사’로만 버텨낼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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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퇴행적, 정치는 억압적이라는 비판이 일반화하고 있다.
“정부 출범 때부터 야당 의석이 많아도 너무 많다 보니 절벽을 마주 보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야당 결재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도 더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설득하고 했어야 하는데, 그 대신에 ‘3사’를 선택했다. 그래서 이 정부는 ‘3사 정부’라고 본다, 검경 동원한 ‘수사’, 감사원·국무조정실 등의 ‘감사’, 국세청·공정위·금감원의 ‘조사’다. 이건 반응성과 책임성이라는 민주 정부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선택이다. 당장은 평정이 되는 듯 보일 거다, 다들 무서워하니까. 그러나 그걸 남용해서는 부작용, 폐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반작용이 생기면 소탐대실할 수도 있다.”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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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 제1당, 제1야당인 민주당은 제구실을 하고 있나.
“민주당도 집권 세력의 일원이다. ‘우리가 뭔 권력이 있냐?’라고 할지 몰라도, 의회 권력이 옛날보다 많이 세졌다. 대통령이 행정 권력을 갖고 있다면, 의회 권력은 민주당이 갖고 있다. 그런데 맨날 ‘약자 코스프레’를 한다. 그러니 별로 와닿지 않는다. 갖고 있는 권력을 어떻게 ‘선용’할 거냐를 생각해야 하는데, ‘닥치고 반대’만 하며 다수의석이라는 칼을 오남용하고 있다. 야당이 발목 잡는 세력이 되면 안 된다. 선거에선 한 표를 져도 진 거다. 졌으면 승자를 존중하고, 진 세력답게 성찰도 좀 하고, 승자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맞다. 인정하고 용인해 줘야 한다. 그러다 ‘정말 이건 아닌데’ 싶은 사안은 선별적으로, 매우 제한적으로지만, 끝까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해임 건의안은 정말 중요한 카드인데, 그걸 두번이나 꺼내고도 우습게 돼버렸다. 그걸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도 문제지만, 남용하는 야당도 문제다. 탄핵도 마찬가지다. 옛말에 ‘공심위상 공성위하’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상’이고, 성을 공략하는 건 ‘하’라고. 민주당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국민과 유리된 싸움에, 전쟁보다 전투에 자꾸 매몰되면 국민들은 ‘그건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야 ‘정치의 실패’, 일본·영국처럼 국가 실패로 이어질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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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적대적 공존’을 보는 국민들 시선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정치권의 이데올로기는 여야 공히 ‘앤타이즘’(Anti-ism)이다. 반주의. ‘니가 하면 난 안 해’, 그 타이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데카르트 식으로 말하면, ‘나는 반대한다, 고로 존재한다’, 즉 ‘비토 에르고숨’에 다들 빠져 있다. 그래서 적대적 공존이라는 말까지 나온 건데, ‘정치의 실패’는 심각한 문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원인이 바로 정치의 실패, 리더십 붕괴에 따른 정치적 교착 상태의 결과다. 정치가 맨날 자기들끼리 싸우고 우왕좌왕하면서 아무 결정도 안 해주니까 엉망이 돼버린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 영국의 브렉시트도 다 정치의 실패다. 정치인들끼리, 서로 더 먹겠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생각하다가 국가의 운명, 국익이 뒷전으로 밀리면서 저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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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 기후 위기 등 급격한 외부 환경 변화에 비해 우리 정치권은 한가로워 보인다.
“지금이 에이아이(AI·인공지능) 시대잖나. 인공지능이 그 어떤 것보다도 크게 인류를 바꿔놓을 거라고 하는데, 대비하고 있나. 일상화된 기후 재난, 0.78까지 떨어진 저출생과 고령화, 게다가 미-중 간의 패권경쟁까지, 당장 꼽아도 네 가지 커다란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대응은 초당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지 않나. 의회나 정치권이 집단적으로 고민해서 뭔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필요한 문제들인데, 고민을 너무 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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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취임 1년이다. ‘사법리스크’와 리더십 문제가 지적된다.
“이 대표의 문제는 사법 리스크에 정무적 리스크가 겹쳐 있다. 거대 야당의 대표에 걸맞은 리더십과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출된 대표를 윽박지르듯 나가라고 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다. 또 사법리스크가 이유가 돼서도 안 된다. 다만, 윤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판적으로 토론하듯 야당 대표에게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이 대표가 검찰의 전방위 수사를 잘 버텨내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당과 진보의 재건이라는 면에서는 별 성과를 못 냈다. 지금은 내년 총선, 나아가 다음 대선 승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어떤 성과를 낼 거냐는 고민이 필요하다.”
대통령 3명 낸 15년 되짚고 ‘준비된 집권’ 실력 다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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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인 과제를 꼽는다면.
“민주당이 세 차례, 15년 집권했다. 디제이, 노무현, 문재인까지. 정권 재창출 실패가 아쉽긴 하지만, 그간 진보가 표방해왔던 과제들이나 정책 이슈들은 어지간히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진보도 다음 챕터,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기 위해 햇볕, 원전, 성장, 재정 정책 등 전반에 대한 장기적, 전면적 리뷰가 필요하다. 예를 하나 들자면, ‘햇볕’으로 비핵화는 실패했다. 압박 정책도 실패했지만. 게다가 북한은 요즘 미사일 마구 쏘고, 법제화에 전술핵훈련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정책도 시대가 바뀌면 튜닝이 필요하다. 외교도, 민주당 의원들이 왜 중국에 가나. 미국, 일본에 가서 민주당을 친중·친북으로 보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오해를 풀도록 노력해야지. 이렇게 진중하게 성찰하고, 새롭게 준비해서 국민들과 소통하고 숙성시키면서 4년 뒤에 정권을 찾아와야 뭐라도 해볼 여지가 있다. 그러지 않고 정권만 잡으면 잘할 수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사이즈가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안 될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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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에 여야 모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전망은.
“아직은 모른다. 여야 모두 ‘(상대가) 저렇게 못하는데 뭐, 우리가 이길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야 모두 패배할 요인들만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기 때문에 누가 져도 이상하지 않을 총선이다. 정신을 먼저, 제대로 차린 쪽이 이길 거라고 보는데, 다만 선거는 야당보다 권력을 쥔 여당에 카드가 더 많다. 그걸 고려해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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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은 있나.
“국회의원 안 하겠다는 약속은 지키려고 한다. 다만, 과거에 ‘지금 이대로의 정치는 안 된다, 세상을 바꾸려면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했다. 말빚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들, 일상이 버거운 분들, 그런 분들의 삶을 개선하는 게 ‘진보’라고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다. 넓게 볼 때 정치에서 뭔가 기여할 게 있으면 하려고 한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