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8·15 광복절 축사는 50년 동안 이어진 남북대화, 그리고 1990년대부터 계속된 국제사회의 한반도 관여 정책에 종언을 예고했다.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는 이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남북한은 자주·평화 통일과 민족대단결 원칙을 확인한 1972년 7·4 공동성명 이후 갈등과 대결의 반복 속에서도 기본적으로 대화와 교류를 추구했다. 국제사회도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로 고립에 처한 북한을 미·일과 수교시키고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는 관여 정책을 펼쳐왔다. 이런 대화와 관여 정책은 미-중 대결 격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윤 정부의 미·일 올인 정책으로 완전히 쓸려나가고 있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예고다.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민족 독립과 자주 노력에 대한 평가, 그 연장선상에서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역대 대통령들의 광복절 경축사는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 방침을 알리는 중대한 행사였다.
윤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를 정적 비난과 일본의 역할 찬양에 할애했다. 이번 경축사 내용 중 “공산전체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한다는 말은 박정희, 전두환도 하지 않던 말이다. ‘민주와 인권, 진보를 말하면 공산전체 세력’이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특히, 그는 “일본이 유엔(군)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말해, 일본이 군사협력국임을 천명했다. 그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가 “3국 공조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캠프 데이비드 회의로 앞으로 정례화된다는 한·미·일 정상회의는 미국의 대중 대결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주축이다. 그 주축은 한반도 관여 정책을 이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국이 1990년대 이후 북한과 대립하면서도 대화를 시도하고 수교를 맺으려고 한 관여 정책은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른 미국의 일극체제가 배경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경쟁국이 아니고,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 체제의 핵심으로 편입된 상황이었다. 핵개발을 하는 북한을 달래서 미국 일극체제에 편입하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이 있었기에 북한을 제재도 하며 어를 수 있었다.
이제 미국은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도전으로 일극체제를 위협받는 상황에 봉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나토를 재정비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나토에 준하는 집단방위체제를 구축하려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펼친다. 대중 봉쇄를 위한 미·일·오스트레일리아(호주)·인도의 쿼드 체제가 큰 틀이고, 2021년 9월에 결성된 미·영·오스트레일리아의 오커스 군사동맹과 곧 강화될 한·미·일 삼각체제를 양축으로 한다.
미국은 전후 아태 지역에서 자신을 중심에 두고 역내 각 국가와 개별 동맹을 맺는 자전거 바큇살 같은 ‘허브 앤 스포크’ 체제를 운영했다. 아태 지역 각국들이 역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어 나토와 같은 집단방위체제를 구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1970년대부터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를 추구해왔다. 중국과의 전략 경쟁이 본격화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는 한·일 역사 문제에 직접 개입해 해결을 강요하고, 군사정보 공유를 시작으로 한·일의 직접 군사협력 관계를 만들려 했다. 윤 정부가 일본에 ‘통 크게’ 양보해,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가 궤도에 올랐다.
북한도 미·일과의 대화와 수교에 매달리지 않게 됐다. 북한이 핵개발 하고, 미·일에 애면글면한 이유는 중국과 소련이라는 뒷배가 없어져 고립됐기 때문이었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맞서며 긴밀한 양국 관계가 형성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러시아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지난 7월27일 북한의 ‘전승절’ 특사로 파견했다. 중·러 진영은 북한을 어느 때보다 필요로 한다. 북한도 확대되는 브릭스 등을 대상으로 생태계를 형성하는 중·러에 경제·안보 수요를 충족할 수 있고, 이제 외롭지 않다.
때맞춰 번역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북일 교섭 30년’은 번번이 좌절된 북-일 수교 시도를 냉정하게 진단한다. 지난 30년간 국제사회의 한반도 관여 정책의 실패와 종언을 드러낸다. 저자는 북한과 관계 정상화로 동북아 평화의 집을 만들려 했던 세력들은 졌다며 절망을 인정한다. 하지만 와다 교수는 루신을 인용해 “절망도 희망처럼 허무한 것”이라며 “절망의 바닥 끝에서 희망을 본다”고 말한다. 그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같은 민족인 북한과 대결하려고 일본과 협력한다는 건 한국엔 사도(邪道)”라고 충고한다.
강대국 대결에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윤 정부의 폭주도 우리에게는 절망의 바닥일 것이다.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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