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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애플이 눈을 뺏어간단다

등록 2023-08-16 18:44수정 2023-08-17 02:07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플 본사에서 열린 연례 세계 개발자 회의(WWDC 2023)에서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플 본사에서 열린 연례 세계 개발자 회의(WWDC 2023)에서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애플이 내년 초 새로운 메타버스 장비를 판매한다. 애플은 확장현실(XR)이란 표현을 쓰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보면 메타버스 장비에 해당한다. 물안경처럼 눈을 가리듯이 뒤집어쓰는 장비다. 국내에서는 4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하리라 예상한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에서 작동하던 애플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쓸 수 있단다. 이 장비만 쓰면 어디서나 눈앞에 30인치 모니터를 네댓개 띄우거나, 200인치 스크린을 띄울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그런 모니터나 대형 스크린이 없지만, 내 눈에는 그저 실제처럼 보인다. 눈동자 움직임과 손동작을 정밀하게 감지하여, 키보드나 마우스가 없어도 편리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무게가 좀 무겁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으나, 애플이 수년 동안 칼을 갈고 만든 제품인 만큼 아이폰을 처음 들고 나왔을 때 이상으로 세상에 큰 영향을 주리라는 예측도 있다.

그런데 이 장비의 이름이 자꾸 거슬린다. 이름이 비전프로이다. 비전(vision)은 인간의 시야를 뜻한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상에서 사람은 시각을 통해 70~80% 정도의 정보를 얻는다. 그렇다면, 비전프로를 쓰고 있는 동안 우리는 무려 70~80%의 세상을 애플의 눈을 통해 본다. 애플이 비전프로를 통해 소비자의 시야를 장악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든다.

이미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보는데 길들었다. 지하철, 카페, 길거리,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그나마 스마트폰의 화면은 5인치 정도에 불과하고, 내 눈을 다 가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비전프로는 다르다. 물안경처럼 생긴 이 장비는 우리의 시야를 완벽하게 장악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애플은 이미 에어팟이라는 무선 이어폰으로 우리의 청각을 장악해 가고 있다. 옆 사람이 귀에 에어팟을 꽂으면 “내게 말 걸지 마세요”라는 신호를 받은 느낌이다.

비전프로를 쓰고 무엇을 볼지는 내 선택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이런 상황은 어떨까? 비전프로를 쓴 상태로 잡지를 넘겼더니, 테니스를 하는 남녀의 사진이 있다. 비전프로가 그 사진 위에 테니스용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덧씌워서 보여준다. 비전프로를 쓰고 지하철 승강장에 앉아있는데, 승강장 벽에 무신사 쇼핑몰 광고 사진이 걸려 있다. 비전프로가 무신사 광고를 자라 쇼핑몰 광고, 그것도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광고로 대체한다. 즉, 디지털 창을 통해 내 시야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단순히 스마트폰 화면을 틈틈이 바라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상황이다. 내가 바라보는 물리적 세계의 모습을 이리저리 바꿔버릴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장비가 놀랍도록 편리하고, 경이로운 경험을 준다 해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빅테크 기업의 본질은 새로운 장비, 플랫폼, 콘텐츠 등으로 시장을 장악해서, 사용자의 일상에 자사의 사업 시스템, 즉 돈 버는 구조를 녹여 넣는 것이다. 아이폰, 에어팟이 참 편리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편리함 못지않은 많은 문제를 안겨줬기에 비전프로의 등장을 놓고 기대감만을 품기가 어렵다.

“김 교수님은 비전프로 구매하시나요?” 물론 구매한다. 첫날 달려가서 구매할 계획이다. 그러나 빅테크 기업이 우리의 시야를 뺏어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눈으로도 나만의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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