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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후위기 뒤엔, 노동자 위기 있다 [6411의 목소리]

등록 2023-08-20 18:55수정 2023-08-21 02:38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김영훈 |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오늘도 출근하기 전 기상예보를 확인한다. 오늘도 뜨거운 하루가 되겠구나 생각한다. 나의 일터인 태안화력발전소는 아주 뜨겁다. 석탄을 태우며 내뿜는 증기들로 인해 터빈발전기 주변은 40~50도에 육박한다.

나는 2016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 들어갔다. 급여는 적었지만 2년만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말에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7년째 그 약속은 1년 단위의 쪼개기 계약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동료였던 김용균의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우리는 일터의 안전과 고용안정을 위해 노조를 만들고 불법파견과 쪼개기 계약 철폐,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걱정이 또 하나 생겨났다. 바로 기후위기 때문이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정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폐쇄에 들어간다. 기후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탄소배출 줄이기가 전 세계적인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라는 환경 문제 앞에서 탄소중립은 꼭 이뤄야 하는 목표이고, 그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발전소 노동자들이다. 365일 뜨거운 열기와 소음 그리고 석탄과 분진 속에서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발전소 안의 유해물질과 각종 화학물질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또한 충분히 이해하며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노동자로서 개인의 생존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면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일터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먼저 폐쇄가 진행된 경남 삼천포와 전남 여수, 충남 보령, 울산화력발전소를 봐도 알 수 있다. 발전소 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곳에서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여수발전소 한 노동자는 고용노동부 여수지청과 발전사, 하청업체가 고용대책회의를 열었지만 하청노동자들을 받아줄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그대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노동자에게 대책이 없으니 알아서 살라는 각자도생의 길을 만들어준 셈이다. 이런 문제는 비정규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다음에는 구조조정을 가장한 정규직들 정리해고도 시작될 것이고, 임시로 다른 지역 발전소로 이동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인력은 남아도는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는 더는 갈 곳이 없어지게 될지 모른다.

지금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위기에 놓여 불안에 떨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소상공인들도 발전소가 폐쇄되고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빠져나가면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불안해한다. 당장 단골 식당 밥집 아주머니도 이 작은 동네에서 발전소 노동자들이 빠져나가면 지역이 다 망할 것이라며 볼 때마다 걱정을 늘어놓으신다. 3천여명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태안화력발전소가 없어진다는 건, 그만큼의 손님을 잃는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말이 있다.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데, 지금 우리와 미래 세대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과정에서 어떤 이해당사자도 희생되지 않고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남겨지는 이’, ‘사라지는 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다르다.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대책 없이 남겨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6개 노동조합이 연대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모임’을 꾸렸다. 하지만, 우리가 내는 목소리에 높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얼마나 귀를 기울여 줄지는 알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뜨거운 작업장에서 일하며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터빈 5층 탈기기 주변 작업 후의 모습. 필자 제공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터빈 5층 탈기기 주변 작업 후의 모습. 필자 제공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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