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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6411의 목소리] 정신장애인도 이웃과 서로 돌보며 삽니다

등록 2023-08-27 18:17수정 2023-08-28 02:05

행복농장에서는 정신장애를 가진 스태프분들을 돌보며 함께 농사를 짓는다. 필자 제공
행복농장에서는 정신장애를 가진 스태프분들을 돌보며 함께 농사를 짓는다. 필자 제공

최정선 | 충남 홍성 협동조합 행복농장 농부

도시의 가톨릭 단체에서 일하다 농촌인 충남 홍성에서 산 지 20년이다. 농촌과 농업에 관해 전혀 몰랐던 나는 홍성에 와서 2년제 비인가대학인 풀무환경농업전문과정에서 정원 일을 배웠다. 그 뒤로 마을 초·중·고교에 다니는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한 텃밭원예활동 주민교사로 10년을 일했고, 장애인복지관과 노인요양시설, 병원 등에서 원예활동 강사로 활동하다가 2014년부터 사회적 농업을 하는 행복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행복농장에서는 정신장애(정신질환)를 가진 스태프분들을 돌보며 함께 농사를 짓는다.

행복농장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허브다. 스태프분들 정신장애 치료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와일드루콜라와 애플민트, 바질을 주로 재배하는데, 바질은 여름철에만 키운다.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 납품한다. 쌈 채소에 비해 돈이 많이 되는 작물은 아니지만, 지금껏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지은 허브를 조합원으로 가입된 유기농 영농조합법인에 처음으로 납품했던 1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매출이 많이 늘었지만 농사지어 돈 버는 게 해가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도, 다른 스태프들도 돈 욕심 없이 마음 편히 일하고 가치 있는 활동을 한다는 기쁨으로 함께한다.

행복농장에서 매일 함께 농사짓는 스태프들은 나를 포함해서 넷이다. 한 분은 조현병으로 입원 중이어서 함께 일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한 분은 조울증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20대 청년이다. 우리는 시설하우스에서 허브 농사를 짓는데, 요즘과 같은 여름철에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일하다 행복부엌(마을공유부엌)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퇴근한다. 작물이 잘 자라는 봄, 가을에는 아침 7시께 출근해서 오후 4~6시까지, 겨울에는 오전 9시쯤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나는 스태프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치고 농장에 적응하는 걸 도우면서 함께 농사일을 하고,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약 복용과 병원에 가는 일을 상담하고 거처를 알아보는 등 생활 전반을 돌봐 왔다.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분은 2015년 프로그램 참여자로 시작했다가 인턴 생활을 거친 뒤 농장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일하다가 환청 때문에 멍하게 앉아 있거나 혼잣말을 하며 왔다 갔다 하는 등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웃음이 많고 노래도 잘 부르며 즐겁게 일하셨다. 지난 3월에는 행복농장 인턴을 거치고 마을협동조합에서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을 8년 동안 해오시던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 뒤 함께 일하던 마을 사람 30여명이 모여 추도식을 했는데,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정신장애가 있지만 두 분은 정말 선하고, 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몇 년 전 이장님이 두 분과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관광버스로 나들이를 가셨는데 두 분이 마을 어르신들 간식도 챙겨드리고 버스에서 내릴 때 쓰레기를 알아서 치우는 모습을 보시고 처음의 우려를 접으셨다. 이후로는 마을 잔치에 두 분을 잊지 않고 초대하셨고 두 분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아졌다. 두 분은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로 교육도 받고 활동도 하고 간식이나 초콜릿을 사다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즐겁게 사셨다. 나에게 애플민트가 향기가 좋다고 하시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자기가 노동해서 매달 돈을 벌 수 있어 보람 있다고 기분 좋게 일하셨다.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을 돌보며 함께 농장일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 때로는 안쓰러운 마음에 울기도 하고 힘들고 답답한 마음에 속이 상하기도 한다. 감당하기 벅차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안쓰러움과 정으로 또다시 밝은 얼굴로 함께 일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이나 주변 단체 사람들과 친밀해지고 서로 위해주며 지내니 정도 많이 들고 정신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고도 그냥 착한 이모, 언니처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사회복지시설이 아닌 농장에서 정신장애인을 돌보는 건 많이 어려운 일이지만 농장뿐 아니라 마을에서 함께 만나고 일하는 이웃들이 서로 돕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2025년에는 홍성군 장곡면에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공동생활가정이 만들어질 예정인데 많은 정신장애인이 마을에서 함께 살고 농장에서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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