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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공부와 사회성 사이의 갈등?

등록 2023-09-13 18:58수정 2023-09-14 02:35

미국 수학 교수 다수가 청소년 시절 ‘사회성의 문제’를 겪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나름대로 균형 잡히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수학 교수 다수가 청소년 시절 ‘사회성의 문제’를 겪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나름대로 균형 잡히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몇 년 전에 젊은 수학자들이 학계를 떠나는 결정에 대해 수학 대가 ㅇ교수와 이야기한 적 있다. 영국에서는 보통 수학전공 학생의 수가 굉장히 많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런던 대학, 에든버러 대학 같으면 일 년에 200명 이상 수학과 입학생을 받는다. 물론 그 중 수학에 대한 열정이 강한 학생은 소수이고 졸업할 때쯤 대부분 직장을 구한다. 그런데 박사학위까지 받고, 혹은 박사 후 연구원을 몇 년 경험한 뒤 학계를 떠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연구 능력이 뛰어나 충분히 성공적인 학문적 커리어를 가질 만한 사람이라도 궁극적으로 다른 산업체나 공무직이 적성에 더 맞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ㅇ교수는 이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수학 연구에 인생을 바치지 않을 학생을 자기가 지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잘라 말해서 다소 충격을 받았다.

초등에서 대학원까지 긴 기간 동안 교육의 목표를 보통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나는 사회에서 필요로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학생 자신이 인생을 잘 살도록 돕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두 목표가 부합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은 개인과 사회의 필요가 충돌하기도 쉽다. 그런데 ㅇ교수의 반응은 여기서 ‘사회’의 해석도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회란 세계 전체 혹은 한 나라일 수도 있지만, 좁게는 ‘수학자들의 사회’, 혹은 ‘자기분야 전문가들’일 수도 있어서, 그 작은 사회의 필요가 때로는 더 광범위한 필요와 상충 관계에 있기도 하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 혹은 갈등은 정치, 철학, 문학을 망라하는 광범위한 주제이지만 교육자는 그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비교적 실용적인 차원에서 만난다. 가령 ‘영재의 사회성’이 요새 문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사회성’은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과 사회에 적응함으로써 스스로 잘살 수 있는 능력을 다 포함할 것이다. 사회성 교육의 중요성이 여러 각도에서 부각되고 ‘사회성이 부족한 영재’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사회성이 인생 성공의 비결이란 종류의 ‘연구’도 인용되고 있다. 물론 대개는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이 개인의 행복에도 중요하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 적응 못 하는 창조적인 기인 이야기도 흔하다. 가령 고독과 가난을 감수하고도 창작에만 전념한 예술가를 영웅시하는 위인전도 많다. 즉,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적 성공이나 원만한 대인 관계에서 오는 행복보다도 자기에게 주어진 천직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그 정도로 극단적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이 자신과 사회의 요구 사이에서 찾는 평형은 각양각색이다.

학업에 대한 열중이 사회성과 부합되기 쉽지 않음은 많은 학자의 경험이다. 그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진 영어 속어 ‘너드’이다. 정확한 정의가 어렵지만 미국 사회에서 너드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부에 남다른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사회 적응력이 부족한 속성을 공유한다. 컴퓨터 과학자 폴 그레이엄이 쓴 수필 ‘왜 너드는 인기 없는가’는 이공계 학자와 교육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제목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너드는 인기를 얻는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상한 답을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음을 그 자신도 시인한다. 청년 시절 가장 인기 없는 계층에 속했기 때문에 불행했던 그가 인기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은 당연히 틀리다고 말한다. 더 복잡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너드는 인기를 얻는 데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를 투여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의 인기 유지는 한없는 노력을 필요로하고 자기 같은 사람은 그러기에는 공부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다고 그레이엄은 설명한다. 사실 내가 아는 미국 수학 교수 다수(어쩌면 대다수)가 바로 청소년 시절 너드로 분류되는 고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또 지금은 나름대로 균형 잡히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다만 ‘성공적인 삶’에 대한 뚜렷한 기준도 당연히 없다).

자녀의 공부와 진학을 두고 지나치게 걱정하는 우리 가족문화의 문제성은 자주 지적된다. 그와 비슷하게 다양한 세상의 가능성 속에서 아이들의 사회성에 대한 걱정도 쉽게 과해질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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