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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아이치의 봄/정영무

등록 2006-03-24 18:21수정 2006-06-09 16:00

정영무 경제부장
정영무 경제부장
편집국에서
도요타 자동차가 있는 아이치현은 일본 제조업의 거점이다. 아이치현 단독으로 세계 17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그곳은 완연한 봄을 맞고 있다. 제품의 주문과 출하가 꾸준히 늘고, 중국 등에서 설비를 되돌려 오는 업체도 있다. 일손 부족으로 구인난을 겪을 정도라고 최근 현지에서 만난 미즈타니 겐지 주쿄대학 교수는 말한다.

한때 중환자실까지 갔던 일본 경제는 5년째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출에서 원기를 얻어 설비투자, 내수로 선순환이 이뤄진다. 원동력은 제조업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키웠다. 이제는 과거처럼 재빠르진 않지만 누구보다 오래 달릴 수 있는 몸이 만들어졌다.

한국이 외환위기라는 외상을 입었을 때 일본은 심한 내상을 겪었다. 일본 기업인들도 1990년대 거품이 꺼지면서 거의 자신감을 잃다시피 했다. 과잉 부채, 과잉 고용, 과잉 설비의 삼중 과잉에 짓눌렸다. 우지이에 준이치 노무라홀딩스 회장은 일본에서 인원감축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회사는 경단련 회장사인 도요타자동차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이 어려움을 겪은 처지에서 건강진단서를 떼어보면 비교되는 점이 있다. 기업 경쟁력은 일본이 훨씬 낫다. 일본의 정부 부문은 두통거리다. 달리 말하면 재정 건전성은 우리가 낫지만,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우리가 한참 뒤처진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작지만 강한 기업이 즐비하다. 일본의 경제 격주간지 <경제계> 최신호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본 중소기업’ 특집기사에서, 작지만 세계를 주름잡는 중소기업이 경제부활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살아남으려고 임금을 낮추고 고용조정을 하고 기술개발을 했다. 대기업 하도급에 의존하지 않고 나만 만들 수 있는 제품에 주력했다. 그 결과 체질이 담금질한 쇠처럼 야물어졌다. 제조업에서 일상화한 장인정신은 서비스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반면, 재정적자는 심각하다. 2005년 기준 국내총생산의 158.9%(한국 30.4%, 추정치)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 중 가장 높다. 의원내각제 권력구조로 말미암아 지역에 퍼주기를 많이 한 탓이다. 홋카이도에는 여우와 너구리만 다니는 고속(!)도로도 있다고 한다. 90년대엔 금융 부실을 정리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가까웠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일본 안에서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이런 출혈 구조를 뜯어고친 점은 평가받고 있다. 헛돈 지출은 이제 안 된다고 눈을 딱 감아버린 것이다.

민간 부문과 정부 부문 사이에 지체현상은 있지만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방향의 공유’다. 일본 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상생의식이 몸에 배어 있다. 미즈타니 교수는 “중소기업이 죽으면 대기업이 살아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기업·중소기업 나누기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도요타는 노사 100명씩이 한자리에 모여 할말을 다하는 것으로 임금 협상을 시작한다고 한다.

재정적자 문제에서도 ‘방향 공유’가 느껴진다. 증세는 논란의 대상이지만, 씀씀이를 아끼고 후대에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데 대략적 합의가 이뤄졌다. 대다수가 재정적자는 단기에 치유할 수 있는 병이 아니며 15~20년 장기 숙제로 가져가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같은 쪽으로 이끄는 힘은 정보 공유와 사람 존중에서 나온다. 일본은 굼떠 보이지만 사회적 자본이 이처럼 탄탄하다.

정영무/경제담당 편집장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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