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내년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16.6%나 삭감된다는 소식에 과학계가 충격에 빠졌다. 연구개발 예산이 줄어든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라고 하니, 과학자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변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한창 진행 중인 연구나 새로 도전하려던 연구 모두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특히 고용 상태가 불안정한 젊은 연구자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더욱 취약한 처지로 내몰릴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이렇게 나가면 국가의 미래가 어둡다는 한탄도 해보고 예산 삭감 방침을 재고해 달라고 하소연도 해보지만, 정부는 별 반응이 없어 보인다.
이 문제가 공론장에서 더 치열하게 다뤄지지 못하는 것은 애초에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연구개발 카르텔이란 것이 있어서 그들끼리 연구비를 나눠 먹는 행태가 문제라고 했지만, 그것이 왜 전반적인 예산 삭감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카르텔을 깨고 연구비 집행을 효율적으로 만들겠다는 정도의 목표 때문에 과학계 전체에 이렇게 큰 충격을 줄 리는 없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더 정연한 논리와 깊은 철학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정부는 미래 한국에서 과학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 것일까.
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논리를 내 맘대로 상상해서 만들어 보자면 이렇다. 과학과 국가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정부 관계자가 요즘 한국 과학자들이 생산해 내는 과학 지식의 규모를 살펴본다. 연구비가 지원된 분야마다 놀랄 만큼 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현황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너무 많지 않나? 이런 것까지 우리가 다 연구해서 세계에 공유해야 하나? 즉 한국에서 과학을 이렇게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 한국의 역량이나 국제적 위상을 냉정하게 진단해서 그에 걸맞은 정도의 과학을 하자는 생각에 이른다. 인구도 줄어들 테고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존속할지도 알 수 없으니, 국가의 분수에 맞는 ‘적정 과학’을 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과학과 인류의 미래까지 고민하던 정부 관계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인류가 지금처럼 과학 연구를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각종 재난의 발생과 대응을 살펴보면 이제 우리는 과학 지식이 모자라서 현명한 행동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이 알고 있다. 필요한 건 정치적 결단과 실천이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적인 연구, 지구와 우주를 인식하는 새로운 관점 따위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점점 불안정해지는 지구 위에서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한 번영이 아니라 가늘고 길게 살아남는 길을 택해야 하고, 과학 지식 창출에 들어갈 돈과 노력은 복지와 돌봄 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상상 속에서) 정부는 이제 과학을 경제성장의 도구로만 인식해온 낡은 틀에서 벗어나 한 사회나 인류 전체의 존속을 위한 지적 토대로서 과학을 다루려 한다. 기술패권이나 5차, 6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라면 매년 더 많은 예산으로 더 많은 과학기술을 연구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앞으로 100년, 200년 덜 고통스럽게 살아남는 일에 더 많은 과학기술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가령 수산물 방사능 수치를 매일 분석하는 연구 같은 건 계속하겠지만, 광활한 바다의 움직임을 다 예측하려고 애쓸 것까지는 없다. 자세하게 연구할수록 괜한 갈등만 생길 뿐이다.
정부는 이처럼 과학의 쓸모에 관한 역사적, 철학적 검토를 거친 뒤에 눈물을 머금고 2024년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기로 한 것이 틀림없다. 다만 너무 급진적으로 보일까 봐 다른 이유를 내세웠으리라. 그러나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 세수 부족으로 인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문명사적 결단이라면, 카르텔, 나눠먹기, 효율화 같은 말로 문제의 본질을 가리지 말고 과학정책의 철학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어떨까. 기초과학의 효용, 신진 연구자 육성 등을 강조하는 과학계의 호소가 왜 정부의 깊은 고민의 결과를 뒤집을 수 없는지 설명한다면 과학계도 토론에 응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대체 어떤 과학이 얼마나 필요한가. 이런 토론이 가능하다면 예산을 깎는 쪽도 더 당당하고 깎이는 쪽도 덜 억울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