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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그 시절 수험생들의 필독서 ‘성문 종합영어’의 아버지

등록 2023-09-21 18:53수정 2023-09-22 02:38

[나는 역사다] 송성문 (1931~2011)

평안도 신의주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다. 1950년 미군이 이북 땅에 들어갔을 때,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펼쳐 소리내 읽었다.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다고 한다. 미군은 통역을 시킬 요량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1·4후퇴 때 미군과 헤어진 뒤 어찌어찌 부산에 도착, 통역장교가 되어 전쟁 시절을 넘겼다. 원래 이름은 ‘송석문’이었는데 남으로 내려오면서 ‘송성문’으로 바꿨단다.

전쟁 끝나고 다시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부산고등학교와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났다. 성문각이라는 출판사에서 영어 교재를 만들어보자며 큰돈을 줘 계약했다.

마침 나라에서 영어 선생님을 뽑아 해외연수를 보내준다고 했다. 두 사람 뽑는 시험에 송성문이 합격했다. 1965년 뉴질랜드에 가서 영어로 쓰인 책을 모아 눈에 띄는 문장을 가려 뽑았다. 이렇게 만든, 1967년 출간한 학습서가 ‘종합영어’다.

책은 큰 인기를 누렸다. 한국에 돌아와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1970년대 사교육계로 자리를 옮겼다. 경복학원 단과반 수업을 했는데, ‘종합영어’ 지은이가 가르친다는 소식에 학생 천이백명이 몰려들어 스피커를 달아놓고 수업했다고 한다.

“지금도 오해가 있는데, ‘종합영어’는 문법책이 아니라 독해책이다.” 송성문의 말이다. “영어 원서를 구하기 힘들던 시절”에 다양한 문체의 조각글과 유명인의 연설문을 모아놓은, 교양 있는 교재였다. 서한샘의 ‘한샘 국어’,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과 더불어 ‘성문 기본영어’ ‘성문 종합영어’는 한 세대를 풍미한 수험생의 필독서였다.

1976년 성문출판사를 따로 차렸다. 40년 동안 천만부 넘게 팔며 번 돈으로 고서적을 사모았다. 도둑이 들었는데 고서의 가치를 몰라 훔쳐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2003년에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모은 국보급 문화재들을 박물관에 기증해 훈장을 받았다. 병원에서 6개월을 산다고 했는데 8년을 더 살았다. 말년에는 수석 모으는 일을 취미로 삼았다. 2011년 9월22일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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