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큰 홍수가 발생한 파키스탄 남부 신드주에서 주민들이 침수된 집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캄바르/AP 연합뉴스
김형준 |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과 더불어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공예와 농업 기반의 경제가 산업과 제조업 중심으로 혁신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산업혁명으로부터 인류가 이룩한 눈부신 사회경제적 발전은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했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에너지 생산은 지구기후시스템에 대량의 온실기체를 쌓아왔고 이에 비례해 지구 평균기온은 상승해왔다. 온난화와 더불어 지구 기후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고, 시스템의 요란은 점점 크게, 그리고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기후위기”의 실체는 사회경제발전-에너지생산-온실기체배출-지구온난화-극한현상-재난피해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으로써 인간이 꾀한 사회경제적 발전이 종국에 자연재해라는 형태의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완화”이고 다른 하나는 “적응”이다. “완화”는 앞서 언급한 일련의 과정에서 “에너지생산-온실기체배출”의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이다. 에너지는 생산하되 온실기체를 배출하지 않는 전략이다. “탄소중립”이나 “넷제로” 등이 이에 속하고 신재생에너지, 원자력발전 등을 활용한 에너지시스템 전환이나 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과 같은 방법도 이용한다. “적응”은 “지구온난화-극한현상-재난피해”의 관계를 정확하고 포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사회의 대응 역량을 키우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이미 진행 중이거나 피치 못 할 근미래의 극한현상 변화를 볼 때 “완화”만으로는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음이 불 보듯 훤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적응”은 “완화”에 비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17년까지 20년 간 각종 자연재해로 전 세계에서 130만여 명이 목숨을 잃고, 약 3조 달러의 경제 피해를 보았다. 사망자 중 91%는 이상 기상현상이 원인이었다. 기후 관련 재해에 의한 경제적 피해는 약 2.3조 달러로 1978년부터 20년 간 비교해 보면 251% 증가했다. 앞으로도 세계 인구가 늘고 경제 역시 성장해간다면 이 숫자들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적응”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는 논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기후변화에 의한 피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을 원칙으로 한다. 선진국에 역사적 책임을 적용하고 더 많은 감축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홍수로 국토의 1/3이 피해를 보았던 파키스탄은 온실기체 배출량이 전체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만일 기후변화가 홍수의 주된 원인이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가?
작년 11월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기후변화로 재해를 입은 취약 국가들을 위해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로 추가하고 “글로벌 실드(Global Shield)” 형태의 전용 기금을 설립하기로 의결했다. 지금껏 선진국들은 특정 국가의 온실기체 배출영향을 추적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후재해 책임을 회피해왔다. 27차 당사국총회 합의문에서도 “책임”이나 “보상” 같은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지 않았다. 자신들 책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술에 배부르랴. “손실과 피해” 합의를 위해 총회 일정이 연장됐었다. 단 하루였지만, 지금도 빠르게 흘러가는 기후변화라는 시간 위에서 보면 커다란 도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