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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과 한일관계 전망

등록 2023-10-15 14:44수정 2023-10-16 14:24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8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양국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8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양국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ㅣ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이달 8일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알려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획기적인 선언이 실현될 수 있었던 정치과정을 되돌아보면서 향후 한·일 관계 발전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공동선언 당시 주한 일본대사였던 오구라 가즈오(85)가 최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박정희 시대의 한·일 관계는 두가지 측면이 있었다. 하나는 박 정권과 일본 자민당 정권의 ‘파이프’(연결)다. 두번째는 한국의 민주화를 추진하는 시민·학생과 이에 연대하는 일본 진보세력의 연결고리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첫번째 파이프는 청산됐다. 이와 함께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자민당 정치의 대규모 부패가 드러나면서 진보세력도 참여하는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런 정치구조의 변화가 한·일 관계의 쇄신을 가능하게 했다.

내가 처음으로 서울에 간 것은 1995년 여름, 사회당 소속 정치인들이 추진하던 민주화 세력 간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일 관계를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 간의 대등한 관계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양국 정치인들에게 있었다.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전 총리는 전통적인 자민당 정치인이었지만 평화외교에는 적극적이었다. 진보적인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과 협력해 미래 지향을 구체화하는 행동 계획을 수립한 것은 큰 성과였다.

1990년대 초중반은 자민당이 가장 진보적인 시기였다. 1993년 8월 미야자와 기이치(1919~2007) 내각의 고노 요헤이(86) 관방장관이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 1995년 8월 ‘종전의 날’(한국은 광복절)엔 자민당도 참여하는 연립정부의 무라야마 도미이치(99) 총리가 식민지배와 침략을 반성하고 사죄한 전후 50년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일본 정부도 출자한 아시아여성기금이 설립되기도 했다. 이 시기 자민당 지도자 중에는 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도 다수 존재했다. 그들은 진보세력처럼 일본의 침략을 단죄해야 한다는 논의는 하지 않았지만, 일본이 어리석은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는 사실은 공유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을 두고 사죄와 구제 방식에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어쨌든 자민당을 포함해 어떤 사죄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합의는 존재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일본의 정치와 사회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민족주의가 확산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일본인 납치 문제, 경제적 약화, 소셜미디어의 보급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오랜 경제 침체기를 겪으면서 경제대국의 지위에서 밀려났다. 실물경제가 취약해지면서 문화나 전통을 내세워 “일본은 대단해”라는 주관적인 자화자찬 움직임이 확산했다. 인터넷의 발달, 특히 소셜미디어의 보급이 배타적 민족주의 담론의 장을 제공한다는 것은 일본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수정주의와 외국인 차별이 일상적 풍경이 된 것은 인터넷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음악과 영화, 드라마 등 문화의 상호 침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동등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돼 있다. 인구 감소, 청년들의 어려움 등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난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파트너십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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