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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6411의 목소리] 자활근로자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가요

등록 2023-10-22 18:59수정 2023-10-23 02:40

삼색 볼펜심을 보디에 하나씩 꽂고 각각 스프링을 끼운 뒤 디바이더를 삽입해 볼펜심들을 나눈다. 그 뒤에 선축을 조립하고 마지막으로 볼펜을 쥐면 손에 닿는 라바라는 고무를 끼운다. 이렇게 볼펜 한자루가 조립된다. 필자 제공
삼색 볼펜심을 보디에 하나씩 꽂고 각각 스프링을 끼운 뒤 디바이더를 삽입해 볼펜심들을 나눈다. 그 뒤에 선축을 조립하고 마지막으로 볼펜을 쥐면 손에 닿는 라바라는 고무를 끼운다. 이렇게 볼펜 한자루가 조립된다. 필자 제공

이종천 | 자활노동자

오늘도 오전 9시에 출근해 작업 책상에 앉는다. 옆자리 동료와는 눈인사나 대화도 없이 바로 볼펜 조립을 시작한다. 내가 하는 일은 검정, 파랑, 빨강 볼펜심에 스프링을 끼우고 볼펜 본체에 끼워 넣어 조립한 뒤 제대로 조립이 되었는지 딸깍딸깍 작동해보고 바구니에 담는 일이다. 이렇게 온종일 작업해서 한 사람당 하루 볼펜 400~500개가량을 만든다.

단순 작업이라 일은 쉬워 보이지만, 일하는 환경까지 수월하지는 않다. 50분 작업에 10분 휴식 주기로 돌아가는 근무시간. 화장실도 가고, 담배도 한대 태우고, 작업시간 중이라 받지 못했던 전화 통화라도 할라치면 휴식시간 10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특히 10년 전 위암 수술을 받고, 올 초에는 대장, 소장 협착으로 절개 수술을 받았던 나는 물이나, 커피 같은 걸 조금만 잘못 마셔도 바로 설사를 하는데, 작업시간 50분을 참다가 휴식시간 10분 안에 해결하려면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그렇게 철저히 시간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휴식시간 10분에서 1분이라도 늦으면 ‘지시 불이행’이라며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물론, 징계라고 해서 무슨 큰 제재를 가하는 건 아니지만, 감독관의 눈이 늘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2년차 자활노동자다. 정확한 사업 명칭은 ‘자활 근로 참여자’. 노동자(근로자)가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자활 근로 참여자도 엄연히 법정 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 일한다. 그렇게 한달을 일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120만원 남짓. 자활 근로 참여자는 노동자가 아닌 참여자이기에 근로기준법에 따른 최저임금이나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저소득 취약계층의 자활과 자립을 위해 마련된 자활센터 사업장은 만기 5년짜리 한시적 일자리다. 5년을 채우면, 더 일하고 싶어도 떠나야 한다. 5년간 일한 데 대한 퇴직금은 물론 없다. 퇴직이 아닌 참여 종료이기 때문에.

내 나이 60이다. 1989년부터 알루미늄 업계에서 30년간 일했다. 품질관리 기사로 시작해 관리팀장, 공장장을 거쳐 개인사업까지 그야말로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 결과 완성차 대기업에도 내가 생산한 제품을 여럿 납품했다. 그러나 내리막은 한순간이었다. 한번 삐끗한 사업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가진 것이라곤 몸뚱어리 하나 딱 남게 된 나는 닥치는 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여름에 가로등 세우는 현장 일은 물론 아파트 경비, 지하주차장 관리원 등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고된 노동으로 건강이 나빠지며 그마저도 모두 그만두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깨 골절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는지 거주지 행정복지센터에 신청해 일정 정도 생활비를 지원받고 치료도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3개월이 지난 뒤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수급자 신분이 유지되려면 자활센터에서 근무해야 한다고. 나 또한 일하고 싶었기에 잘된 일이라고 여겼다. 나처럼 자립 의지는 있으나 여러 상황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동자로서 일할 기회를 준다니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누구든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쓸모와 노동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채울 기회라니, 그것을 또 공적으로 지원해주다니, 참으로 좋은 제도 아닌가.

그러나 한달, 두달 일을 해나갔지만 나는 자존감을 얻지 못했다. 자립과 자활을 돕기 위한 것이라던 나의 일이 정작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로서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 되고 싶어 참여한 자활사업이지만, 정작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또 한번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현실이 서럽다. 정부가 취약계층에 ‘희망’을 준다며 일자리 늘리기에 열을 올리면서 정작 보호받아야 할 이들의 권리는 왜 보호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다가오는 2026년이면 나도 참여 기간이 종료돼 더는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노동 아닌 노동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사회의 일원인 노동자로서 내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있는지, 값싸게 빼앗기고 있는 것인지 헷갈려 하면서.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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