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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주노동자의 꿈이 금의환향?…순천사람 되고 싶은 하안 빈

등록 2023-11-03 09:00수정 2023-11-03 16:44

[안희경의 이방인, 초라함의 상대성]
8 _카레가 된 커리

섹알 마문 감독은 ‘세컨드홈’을 찍을 때 주인공과 인터뷰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일터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겠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모국어로 진행하는 인터뷰에 입 닫고 있던 주인공이 답답했다. ‘실패다!’ 돌아서며 엉겁결에 한국어로 물었더니 주인공이 갑자기 조리 있게 감정까지 드러내며 설명하더란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개념과 단어를 한국어로 익혔기에 능통하지 못해도 한국어가 입을 틔워 준 것이다.

하안 빈씨가 지금 근무하는 순천 농장의 아침 정경이다. 빈은 이 곳에서 터잡고 가정을 꾸리며 살고 싶어한다. 고향과 닮은 산천, 포근한 겨울, 그리고 그의 20대를 보낸 순천이다. 하안 빈 제공
하안 빈씨가 지금 근무하는 순천 농장의 아침 정경이다. 빈은 이 곳에서 터잡고 가정을 꾸리며 살고 싶어한다. 고향과 닮은 산천, 포근한 겨울, 그리고 그의 20대를 보낸 순천이다. 하안 빈 제공

그는 서른세살이고 9년차 직장인이다. 결혼하고 싶어한다. 4년 전부터 장가들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 그런 그에게 봄이 찾아왔다. 여자친구가 생겼다. 직장 동료들이 여자친구를 한번 봐야 한다며 졸라댔다. 그가 책임자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회사 대표도 살짝 조바심을 냈다. 드디어 모두가 그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다 함께 입을 모았다. “착하다! 곱다!” 이제는 어서 장가들라고 등 떠민다. 그런데 대표의 마음 한켠에 불안감이 일었다. ‘서울로 가겠다 하면 어떡하지.’

그의 이름은 하안 빈이다. 한글로는 정확히 표기하기 어렵다. 베트남 북부 박닌에서 자랐고 스물네살에 순천에 왔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취업비자를 받아 식품공장에서 일하며 4년10개월 채워 ‘성실 근로자’가 되었다. 한 직장에서 성실히 일한 노동자를 고용주가 재계약하며 정부에 요청해서 받는 분류다. 일단 출국해서 3개월 뒤엔 한국어능력시험을 보지 않고 재입국 할 수 있다. 서럽게도 ‘성실 근로자’ 제도는 이주노동자에게 폭언과 부당행위를 감내하도록 하는 당근으로도 사용된다.

빈은 한국에 다시 올 때 비자를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비전문취업비자로는 결혼해도 가족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빈은 올해 숙련기능인력비자를 받았다. 체류한 지 4년 넘고 10년 안에 신청할 수 있는 점수제 비자로 여러 분야에 걸쳐 점수를 매겨 고득점자에게 우선권을 주기에 받기가 어렵고 매년 연장해야 하지만 배우자와 살 수 있다. 빈은 휴일마다 사회통합프로그램 80시간을 이수했고, 평가를 통해 5단계를 통과했다. 이 시험은 한국어능력시험 5급과 맞먹는데, 우리 동네 한국학교 선생님들이 단체로 시험을 보고는 5급도 어렵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더 높은 장벽은 소득과 자산 점수다. 2년 평균소득 2600만원을 넘어야 한다. 농축산업과 어업 노동자는 2500만원이고 10점을 받는다. 3300만원 이상은 20점을 받는다. 학력도 점수를 좌우하는데 대졸은 10점, 고졸은 5점, 그 이하는 자격이 없다. 자산이 1억원 이상이면 15점, 3천만원 이상은 5점인데, 빈은 통장에 3천만원을 유지해왔다. 내가 베트남에 보낼 돈이 모자라지 않았냐고 물으니, 1년 동안 송금한 기록이 없어야 한다며 평온하게 일러주었다. 그래도 부모님 사시는 데 괜찮냐고 물었다. 다들 잘 사신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통념을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일 하러 왔다’는 ‘돈 벌러 왔다’와 등식이 되었다. 상대가 이주노동자일 때는 ‘가난해서 왔다’고 낙인 찍는다.

그에게 박닌에서도 잘 살텐데 왜 한국에 사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자식에게 좀더 좋은 교육환경을 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내가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과 똑같네요’라고 하니, 노래하듯 ‘네, 똑같아요’라고 맞장구쳤다.

하안 빈씨가 근무하고 있는 순천 농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담소하고 있다. 이날은 바베큐 파티였고, ‘우리 같이 별 보자’ 회식이었다. 선주민 직원과 이주민 직원 모두 같은 직원 자격으로 일하고 있다. 하안 빈 제공
하안 빈씨가 근무하고 있는 순천 농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담소하고 있다. 이날은 바베큐 파티였고, ‘우리 같이 별 보자’ 회식이었다. 선주민 직원과 이주민 직원 모두 같은 직원 자격으로 일하고 있다. 하안 빈 제공

빈은 계속 순천에서 살고자 한다. 겨울이 따뜻해서 좋고, 산천도 고향과 닮았다고, 농촌에서 자랐기에 지금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산천이 고향과 달라도 있고 싶지 않을까? 비전문취업비자로 온 이주노동자의 시간은 곧 청춘의 시간이다. 자라온 공간, 부모 슬하를 떠나 타국으로 나선 청년들은 인생을 건 만큼 무언가 이루기 전에는 힘에 부치고 모멸감이 들어도 이겨내려 했을 것이고, 살아낸 10년은 전과 다른 삶의 리듬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세상물정도 한국식으로 익혔을 터이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온 섹알 마문 감독은 ‘세컨드홈’을 찍을 때 주인공과 인터뷰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일터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겠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모국어로 진행하는 인터뷰에 입 닫고 있던 주인공이 답답했다. ‘실패다!’ 돌아서며 엉겁결에 한국어로 물었더니 주인공이 갑자기 조리 있게 감정까지 드러내며 설명하더란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개념과 단어를 한국어로 익혔기에 능통하지 못해도 한국어가 입을 틔워 준 것이다.

이주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기도 한 섹알 마문에게 평균적인 이주노동자의 삶에 관해 물었다.

“한 5년 떨어져 살다 보면 마음도 멀어집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되나?’ 가족들도 ‘조금 더 있다 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죠. 열명 중 한명이 고향에 집도 짓고 성취를 누리지만 나머지는 해당되지 않아요. 가 보면 보내준 돈도 없고,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부모형제가 ‘어디서 살 거야? 그럼 나는 누가 돈 줘?’ 그래서 결혼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하고 오면 부인과 양가 부모님께 송금해야죠. 월급은 한계가 있고. 어느 순간 돈 만드는 기계로 외톨이가 됩니다.”

한국에서는 경제적으로 기능하기에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 자존감을 지키게 된다고 한다. 계속 남아 인생을 설계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팍팍하다.

빈은 지금 2차 장벽을 향해 뛰고 있다. 고시 2차에 붙지 않으면 1차 합격의 쓸모가 신통치 않은 것처럼, 숙련기능인력비자로는 배우자가 일할 방법이 없고, 직장을 잃으면 계속 머물 수 없기에 영주권을 따 자유인이 되려 한다. 5년 뒤 신청할 수 있는데 소득이 8천만원 넘고, 4억7천만원 이상 자산이 있어야 하며 학사학위도 받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나온 빈으로서는 5년 안에 대학도 다니고 아파트도 사서 시세차액을 얻어야 가능하겠지만 지방 아파트값은 쉽게 오르지 않을뿐더러 생활비는 어찌하오리까다.

그래서 거주비자를 준비한다. 5년 뒤 신청할 때 소득이 6500만원 넘어야 하지만, 사회통합프로그램 5단계로 대학졸업장을 대체할 수 있다. 일단 거주비자를 받으면 부인도 일할 수 있기에 3년 뒤 영주권 신청까지 두손 맞잡고 돌진하겠다는 것이다. 빈이 아주아주 잘해서 영주권을 빨리 받는다면, 마흔한살에는 자유로운 순천 사람이 된다. 미국은 숙련노동자에게 2년 일한 회사에서 영주권을 신청하게 하는데, 학사나 석사 등 학위전문가보다 영주권 취득이 수월하다고 변호사들이 말한다. 선민의식은 저 너머 히브리에만 있지 않다. 순혈주의에 산업의 허리가 꺾이지 않을까 불안하다.

미국인들이 하는 말이 있다. 범죄율은 흑인과 라틴계 모두 높지만, 라틴계 동네라면 밤길 운전 중이어도 마음 편히 주유소에 들릴 수 있다고들 한다. 이유는 가족 단위로 살기 때문이라고. 동유럽이나 구소련권 이민자들, 아시아 이민자들이 비교적 빨리 1세대에 자리 잡는 경향도 가족공동체에서 이유를 찾는다. 우리나라에 오는 아시아 16개국의 이주노동자에게는 끈끈한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사는 분위기가 군대처럼 혹은 터미널처럼 들고나는 뜨내기 문화여야 할까?

빈에게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제조업만큼 농업에 지원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농촌의 열악한 환경은 곧 한국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통찰이다. 이런 빈을 어찌 한국의 노동자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사족임을 알면서도 붙이고픈 한마디가 있다. 나의 20대, 초라한 순간들을 겪던 시절이다. 사회에서 마주하는 이들이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들은 나를 별 볼일 없는 청년으로 대했다. 혹여 앞으로 어떤 달라진 모습을 보일지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10년, 20년 뒤 변화할 가능성이 당신보다 더 많은 20대에요’라고 알려주고 싶었고, 어금니를 물었다. 지금 나는 뭔가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래야 할 이유도 곧 내 안에서 사그라졌지만 한가지는 잊지 않으려 되새긴다. 내 앞에 있는 누구나 무한한 미래를 품고 있다는 점 말이다. 상대의 현재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고, 미래의 어느 날 나의 관계들 속에 느닷없이 등장할 수 있다.

안희경ㅣ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대담집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담 ‘어크로스 페미니즘’, 문명의 현재와 이를 만들어온 개인의 마음 운용 실체까지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지성 29인과의 대담 3부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대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최재천의 공부’,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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