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칼럼을 기고하는 ‘6411의 목소리’ 코너에서는 여성 대리운전 기사, 가사노동자, 예능 방송작가 등의 삶을 밖으로 드러낸다.
[열린편집위원의 눈] 이예진 | 경상국립대 학생
‘기회비용’이라는 경제용어를 처음 알았을 때, 그 단어는 사회의 이면을 함의하는 듯했다. 세상에는 거대 담론에 의해 축소되고 밀려난 의제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후순위 문제들이 누군가에겐 크나큰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 마치 구조적 약자들에게 붙여지는 이름표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집에는 늘 새로운 신문들이 있었다. 활자 읽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사에 호기심이 많은 나를 위해 가족이 배려해준 덕분이다. 중학생 시절에 구독하던 ‘한겨레’를 열린편집위원 활동을 하며 다시 읽게 되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도서관에 있는 신문 가판대로 향한다. 가판대 위에 편철된 다른 신문들과 비교하며 한겨레를 읽는 일상이 어느새 자리 잡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한겨레는 노동 이슈와 관련해 노사관계, 비정규 노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취재를 이어가고 있었다. 지속적인 노란봉투법 관련 보도로 정책 의제화의 필요성을 주도하고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는 직업군의 노동자를 조명한다. 노동자들이 칼럼을 기고하는 ‘6411의 목소리’ 코너에서는 여성 대리운전 기사, 가사노동자, 예능 방송작가 등의 삶을 밖으로 드러낸다. 최근 한겨레는 쿠팡 노동실태와 관련한 연이은 보도로 쿠팡으로부터 정정보도와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받기도 했는데 이 또한 노동의 구조적 문제를 취재·보도하고자 하는 의지와 책무에서 비롯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복잡한 맥락을 보여주는 일은 노동 보도에서 더욱 중요한 듯하다. 노동 이슈가 꾸준히 보도되는 와중에도 특정 노동 사안과 관련해 얽혀 있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는 까다롭게 느껴진다. 특히 파업 관련 보도가 그렇다. 노동 현안은 어려운 법적 용어와 함께 정치·경제·행정 등 다양한 층위의 문제가 얽혀 있다. 예컨대, 사회에는 여전히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존재한다. 노동조합의 존재 가치, 그리고 연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공감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테다. 노동조합의 주장이 있다면 쟁점이 무엇이고 어떤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며 정책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맥락을 짚고 설득력 있게 풀이하고 해법을 제시한다면 독자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계기로도 작용하지 않을까.
노동 현장의 최전선에서 문제를 발굴하는 보도도 소중하다. 고등학생 시절 한겨레 홈페이지에서
‘노동 orz–우리 시대 노동자의 초상’ 기획과
‘18살 고교 실습생은 왜 죽음으로 내몰렸나’ 기사를 처음 읽었다. ‘노동 orz’ 기사에서 기자들은 주야 맞교대 제조업 현장과 초단기간 노동 현장 등에 취업했다. 원론적 대안이 아닌 노동시간 단축 등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며 노동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과 정책에 대한 성찰을 이끌었다. 현장 실습생 기사 보도 이후, 교육부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학습 중심 현장실습으로의 전환을 발표했다. 실습 업체 점검 등 현장실습 제도 운용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으나 그 당시 제도 변화를 견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 집단은 노동 문제가 외부로 표출되기 어려운 구조적 어려움을 갖는데 신생기업 등 현장 취재도 담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뉴스 수용자의 처지와 기사 몰입도를 고려해 내용 전달 방식에 대한 고민도 부탁드린다.
어김없이 쏟아지는 산재 보도를 읽으며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인내해야 하는 사회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선택의 문제로 여타 언론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하는 기회비용적 노동 의제에 한겨레가 꾸준한 시선을 보내주길 바란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7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