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이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 공교육의 한 단면이 드러나면서, 교육주체들의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의 바탕에는 승자독식 사회의 그림자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실해져 가는 공교육의 이면에는 갈수록 고도화, 효율화돼 번성하는 사교육이 존재합니다.
한겨레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작가 10명과 손잡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 미니픽션 10회 연재 ‘슬픈 경쟁, 아픈 교실’을 시작합니다. 격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이번 기획에는 장강명 정진영 주원규 한은형 최영 정아은 지영 염기원 서윤빈 서유미 작가가 함께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사랑하는 수야, 오늘 하루는 어땠니? 엄마와 아빠는 너와 함께 올랐던 동네 뒷산에 다녀왔어. 힘들다며 안아 달라던 너를 떠올렸고, 이렇게 낮은 산도 힘들다고 하면 안 된다고 다그쳤던 걸 후회했어.
캐비닛 ‘민수’ 안에 메시지를 집어넣으려는데 가득 찼는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내부를 넓히려는 찰나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캐비닛을 열고 나타난 건 작은 인간이었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누군가를 향한 메시지가 모이면 일어나는 일, 그곳 말로 ‘기적’. 그런데 이제 막 빚어진 작은 인간이 이상했다.
“저 속이 헐렁거려요.”
“네? … 그게 무슨 뜻이죠?”
“왜 못 알아들어요! … 여긴 어디예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여기는 목적지와 받는 사람을 찾지 못해 떠도는 메시지나 실수로 잘못 보낸 편지가 머무는 곳이고, 나는 그것들을 지키는 자다.
이곳에 나타난 인간은 기억하는 게 많지 않다. 이름도, 사는 곳도, 그곳에서 사라진 이유도 알지 못한다.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고 조각들은 어설프게 봉합되어 있으며 그 마저도 듬성듬성 비어 있다. 작은 인간 역시 다를 바 없으나 아이를 향한 메시지가 계속 온다면 조금씩 자신을 되찾을 것이다. 이곳에서 인간을 빚어내는 힘은 그곳에서 보낸 메시지니까.
손을 뻗어 조각들을 어루만졌다. 조각에는 좋든 나쁘든 기억이 담겨 있기 마련이라서 아이의 지난날 역시 느껴졌다. 작은 인간을 빚어낸 조각은 하나 같이 심상치 않았다.
민수. 성은 민, 이름은 수. 엄마가 야, 민수!, 라고 부르면 또 뭘 잘못했나 싶어 숨을 멈추고 눈만 깜박였던 어제들. 한글을 외우지 못해 혼난 오전, 피아노 진도가 늦어서 혼난 오후, 밥을 조금 먹어서 안 크는 거라고 혼난 저녁. 받아쓰기에서 50점을 받아 무서운 봄날, 영어학원에서 같이 시작한 친구들은 토킹반에 가는데 혼자만 파닉스반이라서 서글픈 여름, 학교 오케스트라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은데 지금 시작하는 건 너무 늦었다는 말에 속상한 가을, 무슨 동에 사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당당하게 ‘8’동이라고 대답했는데 애들이 꺌꺌 웃어댄 뒤 발표가 두려워진 겨울, 기쁨 없는 너의 계절들.
고개를 깊게 숙인 수가 제 손바닥의 조각 하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여긴 사촌들이 있어요. 서유요, 저랑 동갑인데요, 걔는 중학교 수학 하고요. 서아 누나는 의대 진학반이래요. 저도 가야 하는데요, 그게 참 쉽지 않아요.”
“수도 의사가 되고 싶습니까?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고 싶나요?”
“그거는 아빠 꿈이요. 의사가 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잖아요. 전 수학이 너무 싫어요. 엄마가 이름은 수인데 수 감각이 없다고 막 뭐라 그랬어요. … 사라지고 싶었어요.”
무서움과 서글픔과 속상함과 두려움으로 채워진 작은 인간들. 수가 처음도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닐 터였다.
그곳의 작은 인간들은 왜 사라짐을 택하는 걸까.
나는 언제까지 조각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걸까.
… 같이 전기 놀이했던 거 기억나? 손바닥이 하얗게 되는 게 신기하다며 자꾸 해달라고 했잖아. 나이만큼 주먹 안 쥐면 유령이 잡아간다고 했던 거,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 손 잘 잡고 자야 한다고 했던 거, 실은 너 놀리려고 거짓말한 거야. 이모는 수가 많이 보고 싶어.
“그때는요, 마음에 눈물이 가득 찼어요.”
새 조각이 끼워지자마자 수가 울먹였다. 서둘러 등을 토닥이는데 어느 조각에 새겨진 아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것도 집중을 안 해요.” 전기 놀이 할 때 나이만큼 주먹을 안 쥐어서 혼났지. 다음 날 8회 받아쓰기가 있었네. 시험 볼 때면 심장이 빨리 뛰고 땀을 흘렸구나. 며칠 전부터 준비했지만 또 50점을 받을까 봐서 일부러 주먹도 더 많이 쥐고 부모님 손도 안 잡고 떨어져 잠들었지. 전기 유령님 저를 데려가세요, 하고 기도했네.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다.
우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는데 어깨 끝에 어느 날의 수가 있었다. 콧물은 줄줄 흐르고 침 삼킬 때마다 목이 찢어질 듯 아픈데도 아이는 웃고 있었다. 학교에 안 가도 되니까, 구구단 검사도 안 받고 받아쓰기도 안 할 수 있으니까. 체온계 숫자가 올라가는데 웃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수의 세계에서 높은 숫자는 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눈물이 가득 찬 목소리로 수가 물었다.
“아저씨가 전기 유령이에요? 제 소원 들어준 거예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거죠?”
“전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메시지를 정리할 뿐이에요. 아저씨로 보이지만 나이도, 성별도, 이름도 없어요. 능력도 없고요.”
“아저씨도 무능력자! 나도 무능력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수가 꺌꺌 웃어댔다. 그러자 작은 조각 하나가 눈앞에 떠올랐다. 새로 도착한 메시지가 없었는데도! 이곳에서 만들어진 조각은 너무 작아서 봉합 부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는데 그러자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 야, 민수! 네가 무의동 아니고 8동이라고 했을 때 내가 좀 많이 웃었다. 미안해. 난 요즘 ‘포켓몬 고’를 열심히 해. 네가 포켓몬이 된 거 같아서. 기다려, 내가 너를 찾을게!
… 너 ‘영유’(영어유치원) 출신 아니고 ‘얼집’(어린이집) 출신이라고 놀려서 미안해. 난 ‘체르니 40번’ 치는데 넌 ‘젓가락 행진곡’ 친다고 놀린 것도 미안해. 수! 빨리 와라, 또 축구하자.
조각 ‘게임’이 스며들자 수가 더 환하게 웃었다. 나는 봉합 부위에 조각 ‘축구’를 올려뒀다. 기억들 사이에 잘 스며들도록 토닥였고, 좋은 기억이 번져서 나쁜 기억이 조금은 덮일 수 있도록 살짝 쓸어줬다. 그 손길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아저씨 이름을 생각해 봤거든요. 무제 어때요? 미술관에서 본 건데 제목이 없어서 생긴 제목 같은 거요.”
수로 말미암아 이름 없는 자는 ‘무제’가 됐다. 우리 주위로 작은 조각들이 떠올랐고 아이는 조금씩 아물어갔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채워지진 않았고 상처는 남아 있었다.
“무제! 여기도 좋지만 이제 집에 갈래요.”
“돌아가면 산에 올라야 할 텐데. 높고 높은 산 말이죠.”
“뒷산도 산이거든요! 저는 어린이니까 뒷산도 충분하다고요.”
“받아쓰기도 해야 하고 구구단도 외워야 하는데? 잠깐, 7 곱하기 7은?”
“어, 7, 14, 21…. 저 속이 헐렁거려요.”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작은 인간과 헤어질 시간이었다. 나는 수의 손을 잡고는 손바닥을 탁탁 쳤고 손끝부터 잡아 쥐었다.
“만약에 실패하면 어쩌죠?”
“… 다시 하면 되죠.”
수가 숨을 들이키더니 하얗게 변한 손을 굳게 쥐었다. 작고 작은 주먹이었다.
지영 | 2017년 5·18 문학상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으로 독자와 만났습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앤솔로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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