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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왜 NGO] 깎였다 다시 채워지는 그 무엇

등록 2023-11-23 19:08수정 2023-11-24 02:38

경북 울진 부구리에서 진행한 시민참여 나무심기 행사 모습. 필자 제공
경북 울진 부구리에서 진행한 시민참여 나무심기 행사 모습. 필자 제공

정다경 | 생명의숲 활동가 

‘와…. 차상위계층 아냐?’ ‘월세랑 생활비 내면 남는 게 있어?’ ‘그냥 이직하는 게 어때?’

나의 경제적 현실을 얘기하면 돌아오는 어른들과 친구들의 조언이다. 현실의 삶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내가 속삭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게. 나는 왜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을까? 요즘 가뜩이나 분위기 안좋은 시민사회단체 일을 놓지 못하고 있을까?

활동가의 ‘ㅎ'자도 모르던 2019년 강원도 한 농촌의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났다. 전교생 40명이 채 되지 않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방과 후에 돌보는 곳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대표님과 함께 충남 홍성군 도농교류센터, 강원 평창군 숲놀이센터, 지리산 등지를 찾아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셨던 대표님은 그때마다 방문 이유와 더불어 민주주의나 시민참여 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밌게 풀어내시곤 했다. 그러면서 나도 점차 활동가의 삶에 스며들게 되었다.

아동돌봄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학생 때부터 숲과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환경분야 쪽 활동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함께 일하던 선생님들의 응원 속에 환경단체로 이직했다. 반짝거리는 미래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다. 시민들의 편에 서서 함께 활동한다고 생각했는데 주민들이 우리 활동을 비난했고, 협동하는 만큼 동료 간 갈등도 있었으며,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협의를 위해 관할 기관이나 기업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들어온 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아 마음이 깎여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무던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2023년 초, 경북 울진 부구리와 강원 동해 초구동 산불 피해지를 답사하게 되었다. 초구동은 까맣게 숯이 된 나무들이 넘어진 채 남아있었고, 부구리는 울창한 숲 대신 먼지가 날리는 모래산이 돼 있었다. 이곳을 다시 산으로 되돌려야 한다니 막막하기만 했다.

단체 내부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전문 작업자들을 투입해 나무를 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조금 더디고 불완전하더라도 일부 대상지는 시민들과 함께 나무를 심도록 해 숲의 중요성을 알리는 게 의미있지 않겠냐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져 나무심기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행사 당일, 경사가 급한 데다 그늘도 없어 함께 한 시민들의 체력이 고갈되거나 혹여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웬걸 150여명 참여자는 정해진 범위 넘어까지 묘목을 심으려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일을 마친 뒤에는 이런 뜻깊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돼 고맙다는 인사말까지 남겼다.

요즘도 종종 울진과 동해 산림 복구 지역을 찾는다. 땅에 뿌리를 잘 내려 생장에 지장없는지, 병충해 피해는 없는지 정기적인 모니터링 같은 사후 작업 때문이다. 현장에서 당시 행사 때 심었던 나무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 한켠이 뭉클해진다. 모래바람을 맞으며 자라고 있는 어린나무에게서 숲의 가치를 널리 알리자며 함께 행사를 준비한 동료들과 서툴지만 땀 흘리며 일손을 모았던 시민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깎여나간 것 같았던 마음이 뭔가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물론 고민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불쑥불쑥 어려운 현실이 들이밀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은 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오늘은 움직이고자 한다. 지금은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현실의 나를 잠재우기에는 충분하다.

‘각자도생의 시대 나는 왜 공익활동의 길을 선택했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투고(opinion@hani.co.kr)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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