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지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손지민 | 전국팀 기자
지난 16일 저녁, 일주일간의 스웨덴 출장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스마트폰의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니 시원하게 뚫리는 모바일 네트워크가 답답한 속도 함께 뻥 뚫었다. 외국 어디를 나가도 한국만큼 인터넷 잘되는 곳은 없다고 말하지만, 스웨덴이 어떤 나라인가. 유명 게임 마인크래프트와 캔디크러시사가를 만든 또 다른 ‘아이티(IT) 강국’ 아니던가. 하지만 한국과 비슷한 인터넷 환경을 기대했던 바람은 무참하게 빗나갔다. 취재한 내용을 구글과 네이버 계정에 업로드하는 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고, 파일 용량이 조금만 커도 업로드가 끊기기 일쑤였다. 스웨덴에서 실패한 업로드가 한국 땅을 밟자마자 몇초 만에 해결되니, 묵은 체증이 내려갈 수밖에.
하지만 ‘역시 아이티는 한국이 최고’란 자부심은 하루도 안 돼 꺾였다. 귀국 이튿날 정부행정전산망 장애로 전국적인 ‘민원 대란’이 벌어진 탓이다. 네트워크 장비인 ‘엘(L)4 스위치’가 오작동하면서 공무원 인증시스템(GPKI)에 오류가 생긴 것이 원인이었다. 공무원 로그인이 막히면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인 ‘시·도 새올행정시스템’에 영향을 미쳤고, 이 전산망의 데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정부24 누리집, 무인민원발급기 등도 일제히 멈춰 섰다. 장비 하나 고장 나자 대한민국 온라인 민원 업무가 올스톱된 셈이다.
‘아이티 강국’을 지나치게 자신한 탓일까, 네트워크 장비 오작동은 업무시간 이전인 오전 8시46분 발생했지만 정부는 일선 시·군·구청과 주민센터에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다. 금세 고칠 수 있는 문제라 여겨 안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오전에 주민센터를 찾은 민원인들에게 ‘서류 발급이 가능해지면 알려주겠다’며 전화번호를 받고 돌려보낸 한 공무원은 점심때 시스템이 잠시 작동되자 민원인들에게 연락했는데 그사이 다시 먹통이 된 전산망 때문에 재방문한 민원인들로부터 원망을 들어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 한 구청 공무원은 ‘새올’의 오류를 공지가 아니라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국민 불편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입신고를 마쳐야 하는 임차인, 멀리서 휠체어를 타고 나온 장애인 등 주민센터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의 불편은 더 컸다. 정부는 오후에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는 누리집들을 안내했지만, 인터넷 사용이 어려워 주민센터를 찾아야 하는 노인 등에겐 별무소용이었다.
“민원 업무 먹통 된 건 문제도 아니냐.” 주민센터가 마비됐단 소식이 빠르게 퍼지던 17일 오전 에스엔에스(SNS)에서 발견한 글이다. 아무리 검색해도 그날의 먹통에 관한 이유나 설명이 안 나오니 답답한 마음에 올린 글이라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오후 4시44분에야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냈고, 오류 9시간 만인 오후 5시39분에야 언론에 상황을 공식적으로 설명했다.
‘아이티 강국’은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고, 업로드·다운로드 속도가 빠르다고 이뤄지는 건 아니다. 시스템을 제대로 유지·관리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고 이 경우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까지 마련하는 게 ‘아이티 강국’다운 모습 아닐까.
‘미리 한마디 안내만이라도 해줬다면….’ 이번 정부행정전산망 먹통 사태 대처가 더욱 아쉬웠던 이유다.
sj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