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등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정의당·진보당 등 대전시당 관계자들이 지난 2월10일 오전 대전시의회 앞에서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이 발의한 ‘대전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조례 폐지 조례안’ 철회를 주장하며 공동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의 창]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 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와 일부 시·도 민주시민교육 조례 등이 폐지되는 등 이제 겨우 첫발을 뗐던 민주시민교육이 후퇴할 위험에 처해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언제나 있을 수 있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시민교육을 무조건 없애거나 인성교육으로 둔갑시키려는 발상은 오히려 한국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얼마나 시급한지 보여주는 반증으로 보인다.
냉전 시기 독일에서도 민주시민교육(politische Bildung)을 둘러싼 대립이 심했다. 1969년께 사민당(SPD)이 자민당(FDP)과 손잡고 처음으로 집권했을 때, 빌리 브란트 총리는 취임사에서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감행해보고자 한다!”는 선언으로 독일 민주주의 진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20년 동안 집권했던 기민당·기사당(CDU/CSU)은 권력 상실의 충격이 컸던 때문인지, 새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했다. 그들은 1972년 불신임 투표로 브란트 총리를 탄핵하려 했다. 하지만 탄핵은 부결됐고, 곧 이은 총선에서 사민당은 더 큰 승리를 거뒀다. 아울러 그즈음 적군파(RAF)를 비롯한 극좌 테러리즘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였다.
이런 이념 양극화는 민주시민교육 분야에서도 불거졌는데, 이른바 ‘교과서 논란’이 대표적이다. 보수 진영은 헤센주에서 사용되고 있던 한 사회과 교과서가 계급투쟁을 공공연히 선동한다며 “동독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우리 사회를 파괴하는 지침서”라는 강한 비난으로 포문을 열었다. 결국 독일 연방은 사민당과 기민당·기사당이 집권한 주로 나뉘어 따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됐다. 즉 어느 쪽이 집권했느냐에 따라 교과서와 교육 지침이 달랐고, 그에 따라 복지국가, 평화정책 등등 주제의 수업 내용도 크게 달라졌다.
1970년대 중반 양쪽 진영을 대표하는 교육자, 정치가, 학자 등은 두가지 기준을 통해 민주시민교육을 살리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했고,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첫째, 교육 문제는 순전히 교육학적 차원에서 접근하기로 했다. 두 진영은 서로 상이한 이념을 차치하고 학생을 교육의 출발점과 중심으로 하는 데 뜻을 모았다. 다음으로 독일 기본법 제21조 민주주의 명령과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참조해 민주시민교육의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기로 했다. 즉, 국민의 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민이 자기 결정권과 공동 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법치주의와 다원주의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공유했다.
이런 교육학적, 헌법적 가치에 바탕해 1976년 이른바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이뤄졌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을 교화하듯이 강압해서는 안 되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는 논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교육을 통해 학습자 자신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며 주어진 상황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합의의 3가지 대원칙이었다. 이 원칙들은 당시 민주시민교육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교착 상태를 해소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1990년 독일 통일 뒤 많은 옛 동독의 교사들이 새 체제에서 직면한 도전을 극복하는 데에도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한국 헌법 제1조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으려면, 자신과 자신이 속하는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주권자, 즉 성숙한 시민(mündiger Bürger)이 양성돼야 한다. 결국 한국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감행하기 위해서는 더 세련되고 풍부한 민주시민교육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