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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기자생활] 상상력이 필요해

등록 2023-12-28 19:13수정 2023-12-29 02:39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박지영 | 빅테크팀 기자

 영화연출을 전공했던 학부 시절을 돌이켜 보면, 시나리오 아이템을 찾느라 상상력 빈곤에 허덕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으로 유명한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을 보며, 좌절하고 동경했다. 누군가는 ‘지옥’이라고 말하는 비극적 사건 이면에 있는 기쁨과 슬픔, 성장과 희망을 포착하는 그의 시선은 언제나 배우고 싶은 영화적 상상력의 전범이었다.

영화감독 대신 기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상상력은 필요하구나’라고 절감하는 요즘이다. 두달 전부터 빅테크 업계 등을 담당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커졌다.

최근 에스케이텔레콤(SKT) 관계자들과 출입기자들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지난 10월 삼성 갤럭시와 달리 통화 녹음 기능이 없는 아이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이를 요약해 제공하는 ‘에이닷 전화’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중에서도 민감정보인 음성이 당사자 동의 없이 녹음 활용되고, 통화 중 언급된 개인정보가 저장되는 점 등으로 통신비밀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에이닷 서비스 실태 점검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과 만난 에스케이텔레콤 쪽 사람들은 ‘통신망을 통해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행위에 법 위반 소지는 없는지’, ‘통신망 단계에서 처리되는 민감한 개인정보들의 유출 가능성은 없는지’ 같은 질문에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논란 앞에서 어떻게든 잘 무마하고 넘어가고픈 마음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3천만명 넘는 가입자를 둔 1등 이동통신사라면 중요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그 서비스 이면에 있을 수 있는 사회적 부작용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기술적, 법적으로 뚜렷한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는 납작한 대답을 계속 듣고 있자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지난 4일 운행을 시작한 서울시의 심야 자율주행버스의 경우도, 이른바 고위험 인공지능이 일으키는 안전사고나 기본권 침해에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확한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선 객관적인 데이터 확보가 관건일 텐데,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공지능기본법에서는 자율주행차량 제조업체가 관련 데이터를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윤리적 문제에 관해서도 “셀 수 없는 모든 시나리오를 다 가정할 수 없다”(국토교통부 자율주행정책과 관계자)는 말 이상을 듣긴 어렵다.

챗지피티(ChatGPT) 출시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우리 일상에 퍼져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사라질 수도 있는”(포브스) 2024년, 업계에선 기술혁신으로 인간의 일상이 한층 더 편리해질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그 그림자까지 포함한 인공지능이 몰고 올 총체적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갈수록 빨라져가는 기술혁신의 이면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 모두 ‘비판적 상상력’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나부터도 그런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테지만 말이다.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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