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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춘의 편지] 국민은 정녕 중2 수준인가

등록 2006-04-03 11:35

“자유주의는 본디 국가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막자는 데서 출발했다.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 한 것이다. 민주주의도 이를 위한 수단이며, 시대가 바뀌어도 자유주의의 원형은 바뀌지 않는다.”

<동아일보> 2006년 4월1일치 사설입니다. 창간86돌 '기념'일까요. 사설의 제목에도 무게가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

“自由와 市場을 지키겠습니다.”

사설은 “자유와 시장의 깃발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개인의 경쟁력과 그 총합인 국가 경쟁력을 극대화해야 세계 속에서 자력 생존이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이 신문이 주장하는 것은 경쟁, 또 경쟁입니다. 천박한 경쟁문화가 모든 인간관계를 침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경쟁이 부족하다는 한탄입니다. 한미동맹도, 한미자유무역협정도 저 부자신문에겐 우리의 ‘살 길’입니다.

여기서 냉철히 톺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의 수단이라는 사설의 논리를. 도대체 그것은 어떤 정치학에 근거한 주장일까요. <동아일보>의 주장은 마침내 이 신문이 민주주의를 시장의 자유, 곧 기득권 세력의 자유에 하위개념으로 생각하는 속마음을 스스로 폭로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세계사가 전개되어 온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조차 몰각한 주장입니다.

더구나 이 신문의 잘못된 역사인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가령 “한강의 기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힘을 증명한다”고 외칩니다. 이어 사설은 “한때의 개발독재는 국민의 자유로운 삶에 짙은 그늘도 만들었지만, 눈부신 부흥과 성장으로 자유민주를 위한 토양을 일궈 냈다”고 덧붙입니다.

얼핏 사실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는 적어도 지금 부자신문들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식 시장경제’와는 다릅니다. ‘자유민주를 위한 토양’도 부자신문이 문제의 사설에서 살천스레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적”으로 몬 민주인사들의 핏빛 투쟁을 우선해야 옳습니다.

상대를 지극히 단순화해 비난하는 부자신문의 ‘관행’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골방에 처박혀 ‘함께 살고 함께 죽자’며 서로 발목만 잡고 있어서는 함께 사는 길이 생기지 않는다.”

대체 누가 “골방에 처박혀”서 “함께 죽자”며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까요?

그래서입니다. 새삼 보수적인 경제학자로 한 때 정치일선에 나섰던 조순이 최근 공개적으로 한 강연이 떠오릅니다.

“조중동, 그게 어디 신문입니까?”

조순의 말입니다. 조순은 “조중동이 그나마 중학교 3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 사회를 중학교 2학년 수준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고 개탄했습니다.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당신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5년 전 한겨레신문(2001년 10월17일자)에 “중3 국민 여러분!”제하의 칼럼을 썼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한 신문사의 고위간부는 서슴없이 공언했다. ‘신문은 독자를 중3수준으로 여기고 만들어야 한다.’ 비단 그만이 아니다. ‘몽매한 국민’은 언제나 기득권세력의 ‘소신’이자 소망이다.(중략) 도대체 국민 알기를 무엇으로 아는 걸까. 중학 3학년생에 대한 모독일지 모르지만, 국민을 중3으로 얕잡지 않는 한 감히 꿈꿀 수 없는 풍경화다.”

그렇습니다. 5년이 흘렀지만 여전합니다. 오히려 한나라당 명예총재까지 맡았던 조순의 말을 빌리면 그 사이에 한국사회는 중3수준에서 중2수준으로 떨어진 셈입니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자신문의 여론 왜곡에 맞서 국민 수준은 시나브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부자신문, 저들만 진실을 모를 뿐입니다. 비단 <동아일보>만이 아닙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독자, 부자신문의 독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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