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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조용한 외교’ 다음은 무엇인가? / 강태호

등록 2006-04-21 18:37수정 2006-06-09 15:59

강태호 통일팀장
강태호 통일팀장
편집국에서
독도 문제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우리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다. 정부는 그동안 이들 사안에 대해선 일관된 정책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른바 ‘조용한 외교’와 ‘조용한 해결’이다. 우연이겠지만, 정부는 지금 이 기조를 바꿔 ‘조용한’이라는 수식어를 빼려 하고 있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 전환은 예측불능의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8일 여야 지도부 초청 청와대 만찬에서 조용한 외교를 끝낼 시점에 왔다며 상황의 변화를 지적했다. “일본의 분쟁지역화 의도에 말리지 않기 위해 대응을 절제하는 조용한 외교를 수년간 해왔는데 일본이 하나 둘씩 공격적으로 상황을 변경”해왔다는 것이다. 이제 독도를 분쟁지역화할 위험이 있지만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에서도 그동안 정부는 북쪽의 처지과 사안의 성격상 인도적 차원에서 ‘특수 이산가족’으로 보고 단계적·점진적 해결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17일 국회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과감한 대북 경제지원’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북쪽에 조용한 해결이 아닌 정면대응의 결단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미국, 일본 등의 인권공세라는 상황이 존재한다. 노 대통령의 표현법을 빌리면 미국과 일본은 인권법과 납치희생자를 내세워 공격적으로 상황을 변경해왔다.

외교나 어떤 정책에서 ‘조용한’이라는 수식어는 매우 다양하고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 내놓지 않고 대응한다라는 뜻일 텐데,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예컨대 납치범들이 인질을 잡고 있을 때 ‘조용한 해결’은 필요하고 그래서 용인된다. 이 경우 자기 주장보다는 납치범일지라도 상대의 요구를 우선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질의 생명 때문이다. 그러나 인질의 생명을 중시할수록 납치범의 요구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인질 협상의 딜레마다.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독도의 분쟁지역화를 피하기 위해 정부가 취한 조용한 외교는 일본의 공세를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볼모를 잡힌 듯한 처지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조용한 외교의 다음은 무엇인가? 그걸 공세 외교 또는 적극 외교라 한다면 그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예컨대 공세적으로 나가면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인정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배타적경제수역 획정의 기점을 울릉도가 아닌 독도로 하고, 더 나아가 독도의 법적·주권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한-일 신어업협정을 폐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압박이 설득보다, 강함이 부드러움보다 효과적일지도 의문이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조용한 해결에서 벗어나 이 문제를 ‘과감한’ 지원과 연계시켰다. 그러나 이는 ‘흩어진’ 가족의 생사확인과 만남이 인도적 차원의 당연한 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을 조장할 수 있다. 자칫 몸값을 흥정하는 협상이 될 우려도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을 아끼는 편은 아니다. 조용한 외교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에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에서만큼은 노 대통령도 ‘조용한’ 정책을 써왔다. 지난해 1월 노 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 비유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물건도 자꾸 사자고 하면 값이 올라가는데 협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게 분위기만 띄우는 것은 좋지 않다.”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역사 인식과 현실 외교의 괴리를 인정해야 한다.

강태호 통일팀장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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