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손석춘칼럼] 통곡 임진강

등록 2006-04-26 18:53수정 2018-05-11 16:31

손석춘 기획위원
손석춘 기획위원
손석춘칼럼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뭇 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뜬금없는 감상이라 나무라지 말기 바란다. 월북시인 박세영의 노래다. 임진강. 파주와 개성 사이로 분단의 경계선을 흐른다. 강 앞에 선 시인의 통곡이 사무친다. 시인은 옹근 60년 전 우리에게 낯선 노랫말을 썼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역사에/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애국가〉다. 눈 흘길 일이 아니다. 눈여겨볼 곳이 있다.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구절이다. 그렇다. 은·금만이 아니다. ‘삼천리’는 자원을 억겁에 걸쳐 갈무리해 왔다. 특히 북쪽이 가멸지다. 하지만 금은 이미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바닥을 냈다. 다른 자원은 아직 실하다. 가령 아시아 최대의 노천광산, 무산 철광이 있다. 서해에는 상상을 넘는 석유가 묻혀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통탄할 일이다. 무산의 철을 채운 화물차는 중국으로 달린다. 철광 채굴권만이 아니다. 석유 개발도 중국과 착수했다. 중국은 북녘 최대 탄광에 합자회사를 설립한다. 아시아 최대 구리광산에도 투자한다. 심지어 평양 제1백화점의 매장 운영권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더러는 중국 예속을 진단한다. 더러는 북쪽의 자주성을 들어 무슨 예속이냐고 눈을 홉뜬다. 황희 정승을 흉내낼 뜻은 없다. 하지만 둘 다 옳다. 분명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자주성을 고갱이로 한다. ‘예속’의 단정은 섣부르다. 하지만 예속의 우려는, 경계는, 언제나 필요하다. 미국의 경제봉쇄가 풀릴 조짐은커녕 되레 침략위협으로 치닫고, 인민의 생활은 궁핍한 상황에서 조선노동당이 선택할 폭은 좁다.

바로 그래서다. 대한민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줄달음치는 오늘이 더 통탄스런 까닭은. 노무현 정권은 남북공조가 가장 절실한 시점에 외려 미국과 밀착하고 있다. 남쪽은 미국으로, 북쪽은 중국으로 급경사하는 오늘은 벅벅이 민족 위기다. 민족주의에 시큰둥한 담론을 한가하게 즐길 때가 아니다. 이 땅에서 민족 위기는 곧장 민중 위기와 맞닿아 있다.

한-미 자유무역만이 한국경제의 살 길이라고 부르대는 이들은 언죽번죽 말한다. 신자유주의에 대안이 없다고.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대안은 있다. 더구나 그 대안은 분단을 이기는 길이다. 그렇다. 남과 북은 단순한 경제협력 차원을 벗어나야 옳다. 머리를 맞대고 남과 북 두루 민중의 삶을 풍요롭게 할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을 세울 때다. 남쪽의 기술과 북쪽의 자원, 남과 북의 첨단 과학기술 역량이 만나야 한다.

물론, 미국 조지 부시 정권이 살천스레 펼치는 제국주의 정책과 그에 용춤추는 친미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손쉬운 현실론은 언제나 매국매족으로 이어졌다. 노 정권의 이른바 ‘자주파’들 스스로 찬찬히 톺아보길 권한다.

현실을 타개하려고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저 사대언론이 불러댄 ‘친북좌파’라는 딱지로 ‘자위’하며, 친미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다. 현실을 명분으로 2차 남북정상 회담 성사에 오기 부릴 때가 아니다. 지금 노 정권이 온 힘을 쏟을 곳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정반대다. ‘통일민족 경제’다. 자유로이 건너야 할 곳도 바다가 아니다. 강이다. 통곡하는 임진강이다.

기획위원 2020gil@hanmail.net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