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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고 이종욱 총장님, 편히 쉬십시오 / 김록호

등록 2006-06-02 19:16수정 2006-06-09 16:40

기고
바로 전주에 뵈었던 사무총장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하여 한동안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총장님과의 짧았던 인연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당신은 제가 입학하던 해에 의과대학을 졸업하셨고, 제가 전공의로 일할 때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부에서 일을 시작하셨더군요. 제가 서울에서 빈민과 노동자를 위한 보건의료운동에 몰두하고 있을 때, 당신은 동아시아 빈민들의 나병과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힘쓰고 계셨죠. 총장님과 제가 인연이 닿은 것은 3년 전, 제가 독일 본에 있는 세계보건기구 유럽환경보건센터에서 일을 시작할 즈음 당신은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기구 본부의 사무총장으로서 첫해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총장님과의 만남에서 한국의 아시아환경보건센터 유치 움직임을 전해 드렸습니다. “한국이 세계 12위의 경제강국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기여를 국제사회에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유엔 산하 국제기구를 유치하는 것은 남북 평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점점 환경보건 규제가 국제무역의 장벽이 되는 추세에서 우리나라가 환경보건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국제기구 센터를 유치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라는 배경설명을 드리고, “세계보건기구 아시아환경보건센터를 한국에 유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의 환경보건위원회 소속 젊은 학자들과 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하였더니 총장님은 그런 일을 성사시키려면 몇 해가 걸릴 텐데 과연 총장님 임기 중에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셨습니다.

총장님을 다시 만나면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환경오염, 독성화학물질, 방사선, 직업병, 산업재해, 지구온난화, 교통사고, 불량주택 등 환경보건 문제가 세계적으로 심각한 질병부담을 유발하고 있다고 설명드리고 싶었습니다. 공해산업을 가난한 나라로 옮기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위험작업장에 취업시키는 식이 아닌 지속가능한 환경보건 정책을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하는 의무가 세계보건기구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총장님, 그날 헤어지던 마지막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총회 준비로 피곤하지만 건강은 괜찮다고 하시기에 “건강에도 신경을 쓰세요” 하는 인사말조차 삼켜버리고 나왔습니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제가 안쓰러우셨는지 일부러 당신의 운전기사에게 저를 호텔까지 태워다 주도록 배려해 주셨죠. 총장님은 국제회의에서 국가원수급의 의전을 받으시는 만큼, 총장님 차도 당연히 국가원수들이 쓰는 호화 대형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현관 앞에 세워져 있던 파란색 소형차이더군요. 자세히 보니 연비가 좋아 환경친화적이라고 알려진 하이브리드 차였습니다.

이제 와 생각건대, 총장님께서 세계보건기구의 최고위 지도자로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시아환경보건센터 유치 운동을 이처럼 쉽게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이 운동의 배후는 이종욱 선배님 당신이셨습니다. 당신이 이 땅에 와 계신 동안 뿌리신 마지막 씨앗 하나가 어떻게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지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못다 하신 일은 이제 저희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세요.

김록호 의학박사


필자는 현재 독일 본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유럽환경보건센터의 직업보건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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