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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천수! 톡톡 튀는 ‘뒤풀이’ 한번 더 / 김경무

등록 2006-06-16 19:38수정 2006-06-16 22:57

김경무 스포츠부장
김경무 스포츠부장
편집국에서

2003년 후반 일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난 22살의 이천수는 ‘떠버리’가 아니었던가 싶다.

축구선수들이 꿈꾸는 ‘황금의 땅’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진출 한국인 1호. 당시 엄청난 각광을 받은 터였지만, 이후 소속팀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주전싸움에서도 밀리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천수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파나시나이코스(그리스)와의 원정경기 뒤 현장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서는 이렇게 떠벌리는 게 아닌가. “에이전트가 이곳저곳 알아보고 있는데, 아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으로 진출할 것 같다. 여러 군데와 접촉하고 있는데,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결국 기자들은 부랴부랴 이런 내용을 국내에 송고했고, 일부 신문들에 대서특필되기까지 했다.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지도 못하는데, 웬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런 생각에 큰 의미는 두지 않았다. 역시 그랬다. 이천수는 결국 프리메라리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방출돼 원 소속팀인 울산 현대로 돌아와야 했다.

어딜 가나 ‘톡톡 튀고’ ‘말을 아끼지 않던’ 이천수! 그가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는 성숙한 모습으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13일 한국-토고전 후반 9분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1-1 동점골을 터뜨린 뒤 보여준 그의 골 뒤풀이는 그의 행동만큼이나 감동의 극치였다. 코끝이 찡할 정도였다. 다른 때라면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 세리머니를 할 상황이었는데, 그러질 않았다. 마치 ‘돌아온 이동국’처럼 오른손 검지를 하늘을 향해 연신 찌르며 포효했다. “골 세리머니는 동국이 형이 마지막 A매치에서 골을 넣은 뒤 했던 것을 따라했다. 속옷의 Y자는 여자친구를 위한 것이었고….”

여전히 당돌하고 팡팡 튀는 이천수지만 인간적으로도 매우 성숙해진 모습이다. 자신감도 넘쳐난다. “원래는 (이)을용 형이 차려 했는데, 내가 감이 너무 좋아서 차겠다고 했다.” 토고전 뒤 그가 공개한 골 터지기 직전 상황은 인구에 회자될 정도다. 여섯 살이나 많은 선배가 있는데, 자신이 차겠다고 밀어붙인 이 ‘노랑머리’ 신세대의 당돌함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프리메라리가에서의 좌절 뒤 이천수는 칼을 갈았고, 많은 준비를 한 것으로 울산 현대 관계자들은 전한다. 특히 프리킥 연습을 많이 했다.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이천수는 기자들에게 “머릿속으로 수없이 프리킥 골을 넣는 상상을 한다. 독일월드컵에서 프리킥으로 꼭 한 골을 넣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 말은 보란 듯이 적중했다. 토고전에서 ‘준비된’ 이천수의 프리킥 골이 없었다면, 아드보카트호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월드컵 개막에 앞서 열린 잇따른 평가전에서 상대팀 감독들은 너나없이 가장 인상적인 선수로 이천수를 꼽았다. 전후좌우 종횡무진 다른 선수들보다 많이 뛰는 활동량, 측면 공격수이면서도 위기 때 수비에 가담해 공을 걷어내는 적극성, 다람쥐처럼 빠른 측면돌파 ….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미완의 크로스. 토고전에서도 이천수는 전력을 다해 뛰어다녔지만 결정적인 순간 크로스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등 득점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천수는 토고와의 경기 뒤 “다음 경기가 프랑스인데, 일단은 업그레이드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스스로를 질책했지만 “프랑스를 잡고 16강에 가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월요일 새벽 4시,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프랑스전을 앞두고, 이천수는 분명 뭔가 색다른 골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이천수가 ‘준비된’ 골 뒤풀이를 한껏 펼치며, 한국 축구의 16강 진출에 공을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kkm100@hani.co.kr

김경무 스포츠편집장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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