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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이 정부의 코디네이터는 누구인가

등록 2006-07-10 21:17수정 2018-05-11 14:51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칼럼
나는 미장원에 가면 미용사의 손에 머리를 맡긴다. ‘매사에 전문가를 인정하자 …’는 내가 즐겨 쓰는 말이다. 그들이 머리모양을 디자인하고 자르는 것을 배우는 데 들인 노력과 기술, 안목과 식견을 존중한다. 그러나 미용사, 아니 헤어디자이너가 잘라준 대로 다니지는 않는다. 내 취향대로 변형을 한다. 너무 간섭하면 어정쩡한 아주머니 머리로 자르고, 간섭을 안 하면 머리를 작품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되 휘둘리지는 않고 슬쩍 타협한다. 말하자면 스스로 조정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문가보다 ‘코디네이터’가 우위에 있는 시대가 됐다. 코디네이터란 배우들의 의상과 화장 등을 때와 장소에 따라 알맞은 모습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직종에서 나온 말이다. 옷과 머리 장식, 화장은 모두 전문가의 손을 빌려서 하지만 이들은 자기 주장이 강해서 각자 야심작을 만들어 놓을 때가 많아 튀지 않고 균형을 잡도록 코디네이터가 적절히 조절해 준다. 치과나 성형외과에 가도 코디네이터가 있다. 견적을 내고 손댈 곳을 검토한다. 장기 이식전문 코디네이터는 기증자와 이식자를 연결하고 이식과정과 시기를 조정하는 전문직종이다. 데이터 코디네이터, 푸드 코디네이터 등 모든 직종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을 연결해 종합적 해결책을 찾아내는 이들의 구실이 커지고 있다.

정치야말로 고도의 코디네이팅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종합적 판단을 할 수 있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이다. 대통령이야말로 최고의, 그리고 최종적인 코디네이터가 돼야 함은 물론이다. 나는 이 정부에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의견을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대통령인가 전문가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만 해도 그렇다. 그런 일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아무런 논의도 본 적도 없는데 1차 협상이 진행됐고 벌써 2차 협상 테이블에 나가 앉았다. 이게 그렇게 서둘러서 임기내 성과로 삼을 만한 일인가. 그것을 주장한 전문가들이 있었을 터이지만 나라의 정책을 이들의 손에만 맡겨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을 때는 여론을 경청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서 최종적 조정 구실을 누가 더 잘 할 것인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최종적 코디네이터인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한 의중을 밝히고 국민에게 서둘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국정홍보처나 담당 본부장이 방송에 나와서 국익, 국익 해봐야 국민을 설득할 수도 없고 대통령이 최종적 소임을 포기한 것으로 비칠 뿐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 실은 이해당사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학교운영자 단체가 교육전문가는 아니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대대손손 세습하는 사학들은 교육사업자이지 교육전문가가 아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사학법이라면 국민들의 입맛에 맞을 수 없다. 사학법을 자신의 뜻대로 개정하지 않으면 순교하겠다는, 종교인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하는 종교사학 대표들의 주장은 한귀로 흘려들었어야 한다. 집권여당이 사학법 재개정하겠다고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한 최종 코디네이터는 누구인가. 정치는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지만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될 정책도 있다. 정권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인기 없다고 해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 것은 이 정부에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코디네이터가 없을 뿐더러 코디네이팅 기능이 마비됐기 때문으로 읽힌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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