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독자에게
주로 직장에서일텐데, 여러 종류의 신문을 함께 보는 독자들은 ‘성인 오락실 비리’ 문제를 다루는 〈한겨레〉와 다른 신문들의 보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한겨레는 정부의 성인오락기 심의·관리 체계와 오락실 업계의 고질적이면서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데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신문들은 “여권 인사 누구누구가 개입한 현 정부 최대 비리”라며, 이른바 ‘권력형 게이트’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청와대·여 중진 압력 행사 의혹”(〈조선일보〉 8월21일치 1면) “친여 386 출신, 도와주겠다며 거액 요구”(〈동아일보〉 22일치 1면) “친노 인사들 ‘바다’ 위에 떠오르다”(〈문화일보〉 22일치 3면) 등이 그 예입니다.
물론 한겨레도 오락실 비리가 권력형 비리일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이 부분을 철저히 취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설’ 수준을 넘지 못해, 보도에 상대적으로 신중한 편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론은 수사기관이 아닌 까닭에 사실 확인에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 보도는 의혹 제기에 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혹 제기 역시 기사 작성의 기본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충분히 믿을 만한 근거를 제시하고 당사자의 반론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신문의 기사들에선, 의혹을 제기한 쪽의 일방적 주장만 보입니다. ‘아니면 말고’ 식입니다.
5·31 지방선거 열흘 전 발생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많은 언론들이 처음부터 박 대표를 습격한 지충호씨의 배후에 여권이 있는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검·경 합동수사본부 수사 결과, 지씨의 단독범행으로 밝혀졌고 지씨는 이달 초 1심 재판에서 상해죄 등으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한겨레는 이 사건 보도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들은 “일부 언론의 과장보도와 비교해 차분하고 냉정한 보도 태도를 유지했으며, 지씨 범행 동기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지난주 기자협회가 창립 42돌(8월17일)을 맞아 현직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언론의 신뢰도 등에 관해 조사했습니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를 묻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5%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신뢰도 1위로 한겨레를 꼽은 기자(15%)의 세 배에 이릅니다.
이 조사 결과를 놓고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취재 현장을 뛰는 기자들 스스로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언론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언론 종사자들이 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한국 언론의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안재승 편집기획팀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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