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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춘칼럼] 권력의 단맛을 본 사람들

등록 2006-09-29 18:37수정 2018-05-11 16:34

손석춘 기획위원
손석춘 기획위원
손석춘칼럼
“절반이 넘어갔다. 이미 김영삼 정권 때 그랬다. 남은 절반 가운데 또 절반이 갔다. 김대중 정권 때다. 노무현 정권으로 다시 절반이 갔다.”

문정현 신부의 토로다. 하얀 수염 흩날리며 온몸으로 싸워 온 그가 지친 까닭이다. 심장 지병도 악화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 싸움이 마지막 투쟁이 될 것 같다고 말할 때는 쓸쓸함마저 묻어났다.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절반씩 권력으로 넘어갔다.

결국 1980년대에 비해 오늘 운동하는 사람은 8분의 1인 셈이다. 그렇게 절반씩 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상실감에 젖는 까닭이다. 싸움을 하는 지금 그의 상대도 낯선 사람들이 아니다.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공약했던 노무현 후보에게 건 작은 기대는 이미 당선자 시절에 접었다. 참혹하게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며 타오른 촛불을 노 당선자가 꺼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문 신부의 개탄은 이어졌다. 국무총리는 한명숙임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은 김원웅임을, 통일외교통상위 간사는 임종석임을. 흰 수염의 신부가 허허로운 까닭은 정치권력의 책임만이 아니다. ‘정연주 체제’의 한국방송도 평택 미군기지 보도에서 수구신문과 차이가 없었다.

문 신부는 권력으로 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 까닭을 한마디로 풀이했다. 권력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지금 이 순간도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그릇’을 비춰준다. 권력자의 참모들도 어금지금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일방적 추진이나 전략적 유연성을 보장받은 평택 미군기지 건설에 과연 저들은 동의하는 것일까. 권력에 참여했지만 뜻을 펴지 못할 때, 홀연히 낙향했던 선비들에 견주어 보더라도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다. 권력으로 넘어간 사람들에게 명토 박아 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평택 미군기지 건설은 결코 일과성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칠 사안이다. 그럼에도 여론수렴이 없었다. 충분한 정보제공조차 없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퍼져가는 비판여론을 경청하려는 모습은 노 정권에 전혀 없다. 평택 미군기지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면서 애초의 성격과 전혀 달라졌다. 시민사회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시 작전통제권 따위로 마치 미국에 자주적인 듯 언구럭 부리지만, 노 정권은 미국에 군사적·경제적 예속의 길을 자발적으로 걷고 있다.

‘비전 2030’으로 장밋빛 그림을 언죽번죽 보여줄 때가 아니다. 더구나 모순된 비전이다. ‘능동적 세계화 전략’을 주장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남북 공동번영, 동북아 경제통합을 나란히 놓고 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미국에 군사적·경제적으로 쏠릴 때, 남과 북은 그만큼 멀어진다. 남이 미국에 기댈수록, 북은 중국에 가까이 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미-중 대결시대가 본격화하면 자칫 남북 분단의 영구화로 이어질 수 있다.

거듭 간곡히 호소한다. 평택 기지를 다시 협상하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다시 생각하라. 그것은 이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소박한 민주주의의 요구다. 권력의 단맛에서 끝끝내 깨어나지 않는다면, 민중이 벅벅이 일어설 수밖에 없다. 사월혁명은 군부독재에 맞선 게 아니었다. 민의를 묵살하고 고집과 배짱이 넘쳤던 민간 대통령에게 내린 심판이다.

그렇다. 먹물들은 때마다 절반씩 갔다. 하지만 아니다. 저들이 호의호식할 때 민중의 고통은 더해갔다. 마흔다섯의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를 대낮에 때려죽이고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저들을 보라. 권력에 취한 태깔스런 언행들을 민중은 잊지 않는다. 앙가슴 깊숙이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기획위원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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