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칼럼
각하. 빈 편지지를 앞에 둔 지금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각하의 특출한 사냥 솜씨 때문만은 아닙니다. 각하의 지략이 현실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각하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각하가 취임했던 2001년에 동북아시아는 큰 변화를 맞고 있었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전환점이었지요. 당시 후보였던 각하는 한반도 상황에 깜깜했습니다. 각하가 국제무대의 ‘거물’과 이른바 ‘북한 문제’를 논의하던 방에 콜린 파월이 들어왔다지요. 그때 각하가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이 콜린, 우리는 황소(북한)를 사냥하고 있었소.”
<워싱턴 포스트> 밥 우드워드 부국장의 증언입니다. 그렇더군요. 각하는 이미 ‘황소 사냥’의 결기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취임 이듬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전격 실현되자 각하는 고심합니다. 동북아 평화시대가 열릴 때, 미국은 반세기 넘게 지켜온 이 지역의 패권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입니다. 각하의 지략이 돋보였던 순간은. ‘황소’의 핵무기를 의제로 각하는 단숨에 판을 엎었습니다. 남북관계는 꼬이기 시작했지요. 북-일 수교도 ‘납치 사건’을 명분으로 늦춰졌습니다. 동북아에서 미국은 다시 패권을 꼭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각하의 사냥 욕망을 꿰뚫고 있는 참모는, 제가 보더라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입니다. ‘북한 정권 붕괴’가 목표임을 늘 강조하지 않습니까? 대화 자체를 강력 반대하는 그를 각하가 얼마나 총애할까 눈에 선합니다. 더구나 최근 출판된 파월 전 국무장관의 전기는 궁금했던 문제 하나를 말끔히 풀어주었습니다. 각하가 6자 회담을 수용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짐작이 맞더군요. 걸림돌이 많아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지요. 각하가 럼스펠드에 버금가게 신뢰하는 체니 부통령은 6자 회담을 “북한에 협상 불가능한 요구를 개진하는 자리”로 여겼다는 증언에선 전율마저 느꼈습니다.
물론, 저는 각하가 북-미 핵문제를 해결할 뜻이 전혀 없음을 일찌감치 눈치챘습니다. 북의 핵실험 직후 각하의 충실한 참모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미국은 순이익을 얻었다”고 말한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실 북핵은 각하의 꽃놀이패였지요. 황소를 말려 죽이는 명분이기도 했습니다. 남쪽에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거추장스럽게 된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면서 남쪽의 분열을 유도하고 마침내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 판매에 성공했습니다. 심지어 농부들이 피땀으로 일군 옥토에서 그들을 내쫓고, 그곳에 남쪽 국민의 혈세로 첨단기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어찌 각하의 지략에 경탄하지 않겠습니까.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부시 각하.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만하면 많이 했습니다. 황소는 결코 북쪽 겨레의 상징만이 아닙니다. 사냥이 성공했다고 자부하기엔 이릅니다. 짐짓 온순해 보이지만 성난 황소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입니다. 각하의 충실한 친구들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일본의 아베 신조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남북대화 정책에 언죽번죽 의문을 제기한 대한민국 대통령에겐 더 많은 격려를 바랍니다. 그는 지금 각하의 나라와 ‘자유무역’을 못 해 안달입니다. 얼마나 갸륵합니까. 반대하는 국민을 방패로 찍는 살풍경을 보십시오. 가히 훈장감입니다. 혹 각하에게 ‘똘레랑스’가 남거든 부디 각하를 추종하는 한나라당과 친미언론에도 가문의 영광일 훈장을 베풀기 바랍니다.
쓸모없이 글이 길었습니다. 모쪼록 각하의 자중자애를 권하며 총총 줄입니다.
손석춘 기획위원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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