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편집국에서
“요즘 중국에선 새차가 나올수록 값이 떨어집니다.” 현대차의 중국사업 책임자인 노재만 베이징현대차 대표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한국에선 새차가 나오면 값이 조금이라도 오르지 않습니까? 품질과 성능이 나아졌을텐데 …” (기자) “중국은 정반대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에서 만든 현대차 값은 한국의 1.5배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같습니다. 앞으론 더 낮아질 수 있죠.”(노 대표) 원인은 업체들의 치열한 가격경쟁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쟁자들은 폴크스바겐·지엠·도요타·혼다 등 글로벌 최고기업들이다.
지난 18일 설립 네 돌을 맞은 베이징현대차가 그동안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5만대에 불과했던 생산 능력은 30만대로 늘어났고, 시장점유율은 7%를 넘어서 4위를 달린다. 출범 직후부터 3년 내리 흑자 행진이다. 이런 성공은 20%에 이르는 중국시장의 빠른 신장세와, 경영진이 이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투자 결정을 한 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베이징현대차는 최근 제2공장을 착공했다. 2008년부터는 생산량이 60만대로 늘어난다. 이처럼 시장은 계속 커지고 투자도 때맞춰 들어갔는데, 노 대표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 베이징현대차 사례는 중국 내 우리 기업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외국기업에 우호적이던 중국 정부도 세금감면 혜택을 줄이고, 노동자 권익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등 태도가 급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 대표의 조심스런 표정 뒤에는 더 큰 고민이 숨어있는 듯했다. 바로 모회사인 현대차의 경쟁력이다. 베이징현대차는 한시간에 라인당 68대의 차를 만든다. 반면 한국의 현대차는 최신 설비를 갖춘 아산공장도 63대에 그친다. 매년 업체별 생산성을 분석하는 하버리포트를 봐도 베이징현대차가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평균 노동시간은 23시간으로 일본의 20시간과 비슷한 반면, 현대차 울산공장은 30시간, 기아차는 40시간으로 차이가 크다.
한국 현대차의 생산성이 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노사관계’를 주요하게 꼽는다. 현대차 노사는 매년 파업과 생산 차질로 홍역을 치른다. 중국의 노조(공회)가 일종의 공산당 하부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베이징현대차의 노사관계는 한국과 많이 달라 보인다. 무엇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협력이 인상적이다. 노조는 매년 직공 기능시합을 직접 열어 노동자들의 기술 향상에 앞장선다. 또 생산 개선 활동을 장려하고, 현장조직 사이 선의의 경쟁을 독려한다. 경쟁 항목에는 안전, 품질, 원가절감 등이 들어있다. 혹시 노조가 노동자 권익 옹호라는 책임을 등한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장즈슝 부위원장의 답은 명료하다. “얼마 전 회사가 직원을 해고했지만 노조가 반대해서 복직이 됐다. 노동자들의 합당한 권익을 옹호하는 것은 각국 노조가 동일하다. 하지만 노동자의 권익을 장기적으로 지키려면 회사 발전에 협력해야 한다.”
노 대표는 “한국공장의 경쟁력이 중국에 뒤떨어질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현대차의 경우 노사협력이 제대로 되면 지금보다 경쟁력은 더 강해지고, 이익은 커질 것이다. 노사 불신은 노사 모두의 책임이다. 그동안 회사가 생산량 확대에만 집착해 생산성은 등한시하고 장시간 노동에 의존해 왔다거나, 일감이 적어 생산라인이 놀아도 노조의 반대로 작업배치 변경조차 어렵다는 등의 책임 공방은 이제 한가해 보인다. 노사가 협력해서 국내공장의 생산성을 중국과 인도, 체코의 공장보다 높이지 못하면, 현대차 울산공장과 아산공장의 일자리마저 빼앗길 수 있다. 더불어 한국경제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곽정수/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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