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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미국도 중국도 아닙니다! /오태규

등록 2006-11-10 18:27

오태규 민족국제부문 편집장
오태규 민족국제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우리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를 제대로 보전하려면 제나라를 섬겨야 합니까, 초나라를 섬겨야 합니까?”(등나라 문공)

“이것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말을 막지 않는다면, 한가지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못을 파고 성을 쌓아 백성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지킨다면 해볼 만합니다.”(맹자)

〈맹자〉의 ‘양혜왕 장구 하’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마치 맹자가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고민을 미리 알아채고 책 속에 옮겨 놓은 듯하다. 더욱 실감이 나도록 한국의 상황을 대입해 본다면, 등나라는 한국, 제나라는 중국, 초나라는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등나라 문공은 노무현 대통령이어도 되고, 대통령을 꿈꾸는 대선주자들이라고 해도 좋다. 맹자는 딱히 대치할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그저 ‘철인’이라고 해두자.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재와 압박’을 주장하는 미국과, ‘대화’를 내세우는 중국 사이에서 고뇌하는 노 대통령이 마침 청와대를 방문한 철인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한다. “요즘, 북핵 문제 때문에 골치가 너무 아픕니다. 이 문제를 보는 미국과 중국의 생각이 너무 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경입니다. 두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로서는 어느 쪽 말을 듣는 것이 유리합니까?”

이에 철인은 겸손하지만 명쾌하게 대답을 한다. “어느 나라 말을 듣고 안 듣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와 국민이 일치단결해 대응을 한다면, 어느 나라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도 나라를 튼튼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친미정책이나 친중정책을 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부가 똘똘 뭉치는 것, 즉 인화와 일치단결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얘기다.

하물며 두 나라도 아닌 네 나라나 되는 강대국 틈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국 사람들로서는 돌에 새겨놓고 하루에 몇 번씩 들여다봐도 아깝지 않은 교훈이다.

하지만 과연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어떠한가? 한목소리로 소리 높이 외쳐도 주변의 강대국이 들어줄까 말까 한 상황인데도, 국민의 목숨이 걸린 외교·안보 사안에서조차 의견이 사사건건 엇갈린다. 북핵 문제를 봐도 ‘전쟁 불사론’에서부터 ‘대화 만능론’까지 너무나 편차가 크다. 한 나라의 주권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전시 작전통제권의 환수 문제도 정쟁의 도구로 변한 지 오래다. 한나라당은 미국에 ‘전시 작전통제권을 빨리 돌려줘서는 안 된다’는 로비를 펴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였다.

이렇게 내부가 갈라져 있다 보니, 외부의 환경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한들 제대로 실속을 챙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는 우리나라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대북문제와 관련해 강경책을 주장하는 공화당보다 대화를 내세우는 민주당이 승리한 것은, ‘전쟁만은 절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매우 좋은 일이다. 더구나 지난달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쪽 파트너의 설명에 멸시의 시선으로 ‘정말이냐’(Oh, really?)고 비아냥대던 ‘대북 강경파의 거두’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경질된 것을 대북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봐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우리가 이런 환경 변화를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이다. 요즘처럼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절박하게 들리는 때는 없다.

오태규 민족국제부문 편집장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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