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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춘칼럼] 연민과 독재

등록 2006-11-15 19:05수정 2018-05-11 16:35

손석춘 기획위원
손석춘 기획위원
손석춘칼럼
무력한 대통령. 시나브로 퍼져가는 여론이다. 어느새 장삼이사도 그렇게 믿는다. 압권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다. 노무현 대통령을 일러 “거의 송장, 시체가 다 돼 있는데 비판해서 뭐 하느냐”고 꼬집었다. 청와대가 발끈했다. “대통령을 폄훼해서 자신의 주가를 높이려는 행태”라고 날을 세웠다. 아직도 정치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대통령이 가엾다는 연민도 제법 퍼졌다.

하지만 울뚝밸을 삭일 때다. 연민론은 기실 송장론과 차이가 없다. 가령 대통령이 힘이 없어 뜻을 펼치지 못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심지어 청와대 참모들까지 눈을 홉뜬다. 제왕적 대통령 시대가 아니란다.

그렇다. ‘무력한 대통령’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송장론에 꼭 부르르 몸 떨 일이 아닌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작 대한민국의 고위 공무원, 법조인, 기업인, 금융인들은 달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물었을 때다. 63.2%가 노무현을 꼽았다. 2위인 이건희는 24.2%다.

왜 그럴까. 괜스레 예우 차원에서 그랬을까. 아니다. 노무현이 실제로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음을 알아서다.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올해만 한정해도 그의 권력은 뉘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연초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선뜻 합의했다. 스크린쿼터, 과감하게 줄였다. 광우병 의심이 남은 미국산 쇠고기, 전격 수입했다. 북한 핵실험 바로 다음날에는 기자들을 불러놓고 언죽번죽 말했다.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만을 주장하기에는 어려운 문제 아니겠나. 그리고 효용성이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지 않겠나.”

다행히 거센 비판 여론으로 남북 화해정책은 아직 파탄을 맞지 않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지금도 권력을 살천스레 휘두르고 있다. 보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겠다는 저 독선을. 반대 여론이 들끓어도, 네 차례 협상과정에서 이미 불균형이 곰비임비 드러났음에도, 전혀 흔들림 없다. 자신의 ‘감’을 확신해서란다. 전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줄곧 부산 출마를 고수해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의 정치 감각은 실체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그 점에서 정치인 노무현은 그를 정계로 이끈 김영삼과 어금지금하다. 감을 중시한다. 옳은 비판을 해도 막무가내인 까닭이다.

하지만 딱히 김영삼의 말로가 아니더라도 성찰해 볼 일이다. 노 대통령의 감이 얼마나 숱한 실정을 불렀던가. 한나라당에 대연정 제의는 결코 좋은 감이 아니었다. 부동산 정책의 감은 또 어떤가. 북 핵실험 뒤 미국의 책임을 비판한 김대중과 견주어도 그의 감각은 실망스럽다. 수구언론이 뭐라 해도 ‘뚜벅뚜벅’ 걸어야 할 때, 뒷걸음질 쳤다.

그래서다. 새삼 명토박아 둔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무력하다며 연민을 느끼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고집스런 권력의 어설픈 감에 치료법은 오직 하나다. 국민의 힘이다. 부익부 빈익빈에 분단 고착화를 불러올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평택 미군기지의 독단적 추진을 막으려면, 민주 시민들이 침묵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이 대통령에 연민을 갖는 것은 사치다.

민의나 비판을 모르쇠하는 대통령의 감을 바꿀 것은 청원도 설득도 아니다. 민중의 결집된 힘이다. 11월22일 집회가 소중한 까닭이다. 노 정권은 기득권 세력에겐 무력한 ‘송장’일지 모른다. 하지만 빈민에겐,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에겐, 결코 무력한 대통령이 아니다. 무자비한 독재정권이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신자유주의 독재’의 본질이다.

손석춘 기획위원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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