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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집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등록 2006-11-15 19:18수정 2018-05-11 14:54

김선주칼럼
내가 서른 살이고 집이 없다면 지금은 집을 사지 않겠다. 자고 나면 천이니 억이니 오르는 아파트 시세를 보고 배아파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겠다. 내가 마흔이 넘고 아이들도 커서 넓은 평수로 이사가야 할 형편이라도 아파트는 사지 않겠다. 미쳐 돌아가는 부동산 폭주열차에 절대로 올라타지 않겠다.

아파트 한 평에 1억원인 시대가 온다는데 서울의 아파트 한 평을 살 돈으로 시골에 땅을 사겠다. 서울에서 한두시간 되는 곳에 헌집이 딸린 땅을 발품만 팔고 연구만 잘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길은 전국 어디나 잘 뚫렸고 차만 있으면 서울에서 주말마다 다닐 수 있다. 산골에서도 무슨 선생 영어과외도 할 수 있고 인터넷도 유선방송도 잘 터진다. 서울에서는 전세를 살거나 좁은 집에 복닥거리고 살아도 주말마다 아이들과 넓은 시골집을 가꾸며 사람답게 폼나게 살겠다.

집값 하나는 잡고 말겠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집값은 마구 뛴다. 이 정부 들어 가장 혜택을 본 건 부동산 부자들이다. 공급 확대니 하면서 새도시 발표를 하면 그 땅들은 주로 서울 땅부자들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땅값 보상을 받아 강남에 아파트를 산다. 강남에선 5억원에 산 아파트가 5년 사이에 20억원이 되었다. 되팔 때 5억원 정도의 세금을 내라니까 세금폭탄이라며 정부에 삿대질을 한다. 돈벼락을 맞았으면 세금도 폭탄을 맞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10억원의 불로소득이 생긴다. 그러나 내년이면 틀림없이 정권이 바뀌고 새 정권이 새로운 정책으로 자신들을 세금폭탄에서 구해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집을 안 팔고 매물을 거두어들이니까 집값이 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분포를 보면 지금이 생애 처음 집을 장만하려는 나이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다. 좀 넓은 곳으로 이사가려는 40에서 50살까지의 인구도 곧 정점에 왔다. 10년 혹은 15년만 기다리면 주택 수요는 급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속도와 규모로 서울근교에 새도시를 만들면 지금의 30대가 50대가 되고 40대가 60대가 될 시점이면 서울의 아파트는 남아돌 수밖에 없다. 그때 서울에 집을 사서 시골집은 소위 별장으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자. 지금 집을 사려고 안달을 하면 할수록, 초조해하면 할수록 속으로 웃는 사람들이 바로 부동산 부자들이다. 그래 너희들이 수십채씩 갖고 있거라 나는 모른다 해버리면 전세금도 내려가고 집값도 내려간다. 그들만의 ‘놀이’를 하라고 놔둬 버리자는 것이다.

시골의 땅은 50평도 괜찮다. 주변 경관이 전부 내것이거니 생각하면 된다. 노년엔 자녀들 다 키우고 그곳에 살겠다는 희망을 안고 사는 것이 좋다. 그때쯤이면 수십채 수백채씩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은 전세가 안 나가 고민할테고, 전세금도 집값도 똥값이 될 것이다. 십 몇 년 배아파했던 것이 가라앉을 것이다. 요즘 동남아로 은퇴 이민을 가서 귀족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는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농촌에도 아이들 교육시키고 부부가 한 달에 백만원이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가정부를 둘씩 두고 골프를 치고 살아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몰라도.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부동산 거품은 오늘내일 잡히지 않겠지만 10년 안에 잡히리라는 희망을 갖고 살자는 말이다. 30년 전 신혼살림을 수유리 근처에서 20만원 보증금에 월세 10만원으로 시작해서 집장만과 은행융자 갚느라 뼛속까지 시렸다. 집없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이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적어본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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