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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한국과 일본, 닮은 점 다른 점 /한승동

등록 2006-11-26 18:18

한승동 선임기자
한승동 선임기자
편집국에서
“이과, 수학 싫다는 얘긴 오래됐다. 국어 실력은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단계를 넘어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학과 나온 수험생을 면접했는데, 화제가 궁했다. 수험공부와 동아리 활동에 바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태연자약했다.”

남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거 일본 얘기다. 얼마 전 〈아사히신문〉 칼럼 ‘경제기상대’에 실린 ‘잘하는 건 뭔가’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좀 더 읽어 보자.

“일본사는, 총리가 ‘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겨라’라며 ‘공부 안해’를 과시한다. 아이들이 공부할 리가 있나. 세계사는 수험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필수에서 빼는 게 유행이었다. 지리는 공부하기 쉽다곤 하나 지금 젊은이들은 모험여행(배낭여행)도 하지 않는다. 지리에 익숙해질 리가 없다. (취업 면접시험장에서) 세계사, 일본사 또는 지리와 관련해 산업혁명, 고도성장, 지역산업 등 무엇에 관심 있느냐 물어도 도통 반응이 없다.”

그러면서 지금 아이들, 젊은이들 도대체 뭐 잘하는 과목이 있기나 할까 하고 묻는다기보다는 탄식을 한 뒤 계속한다.

“지금 아이들, 젊은이들이 홀딱 빠져 있는 것,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 휴대폰이다. 전철 안을 들여다보면 휴대폰 중독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 수 있다. 휴대폰에 돌아다니는 정보랬자 인사나 연락 따위 긴요하지도 않은 얘기부터 게임, 쇼핑, 동화상, 이지메(따돌림) 메일까지, 그런 걸로 정신들 없다. 시험지옥은 그대로 둬 놓고 융통성 있는 교육 한답시고 필요 없다는 과목은 버린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나마 했던 과목도 버린다. 시간 깨기로 휴대폰에 열중한다. 이래서는 골이 텅 빌 수밖에. 게다가 ‘죽어라’라고 강요까지 한다. 이지메 지옥 학교에서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나라 위해 죽어라’라고 가르치겠다고 한다. 학교는 ‘살아라’를 가르치는 곳 아닌가? 뇌를 단련하고 제대로 살기를 바라는 극소수 아이들은 정치나 학교를 상대하지 말고 자력으로 할 수밖에 없나.”

얼핏, 학교 성적 올리기를 시장경쟁력 강화나 민족우수성 과시 차원에서 집착하기 십상인 우파 인사들 푸념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다.

“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기라”고 했다는 총리 얘기는 아베 신조가 총리 되기 직전 일본기자클럽이 주최한 총리 후보 공개토론회에서 ‘패전까지의 일본 제국주의 행보를 침략전쟁이라 보느냐’는 질문에 얄팍하게 피해 가려고 내뱉은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일본에서 난리가 나 표 잃고, 아니라고 하면 이웃나라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어쨌든 제대로 역사교육 안 시키는 걸 비꼬고 있다. 교육기본법 개정 얘기도 마찬가지다. 패전 뒤 개인과 시민 양성에 맞춘 현행 교육기본법을 애국과 충성심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꾸겠다는 건 헌법 9조 개정과 함께 아베 총리 공약 제1순위에 올라 있다. 그걸 두고 ‘나라 위해 죽어라’고 가르칠 셈이냐고 직격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알고 보면 사뭇 다르다는 일본과 한국 두 나라의 교육이며 그 주변 풍경이 어쩌면 이리도 닮았는지 그게 놀랍다. 위정자들이 곧잘 들먹이는 ‘두 나라는 민주주의와 시장 등 가치 지향이 같다’ 따위의 공허한 수사들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닮았다는 실감을 준다. 일본은 그래도 세계 명문대학 랭킹에 드는 대학이 상당수고, 대학과 아이들을 시험 몇 번으로 일등부터 꼴찌까지 정확하게 줄을 세우는(거기서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도 없다!) 국가적 감별행사를 우리처럼 적나라하게 벌이진 않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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