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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눈물의 데스킹 / 박용현

등록 2006-12-07 16:58수정 2006-12-07 17:08

박용현 24시팀장
박용현 24시팀장
편집국에서
후배가 15만원짜리 달동네 월셋방에 들어갔습니다. ‘양지마을’에서 한달을 살며 겪는 이야기가 ‘김기태 기자 달동네에서 한달’이라는 연재물입니다. 어제는 그곳 아이들 이야기가 실렸습니다(www.hani.co.kr/arti/society/health/176684.html). 원고를 받은 수요일 오전, 데스킹(기사 손질)을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한해 두세번 보러 오는데, 같이 살면 안되냐고 아빠한테 물었더니 “안된다”고 하더라는 재민(12·가명)이 대목이었는지, “아주 어릴 때” 엄마랑 아빠랑 피자를 함께 먹던 모습이 엄마에 대한 기억의 전부라는 동훈(10·가명)이 대목이었는지 모릅니다. 정작 자기들은 울지 않는 천연덕스러움에 제 눈에 물기가 배었습니다. 커서 ‘굿네이버스’ 같은 단체에 들어가 인도 같은 나라에서 봉사하겠다는 재민이나, 장애인들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진서(13·가명)의 포부 대목에서 눈물은 기어이 한방울 분량을 채웠습니다. 아이들은 왜 대통령이나 장군이나 의사나 법관이 되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마흔이 다 되어, 훤한 아침, 그것도 사무실에서, 잠깐 울었습니다. 컴퓨터에서 흘러나온 재키 드섀넌의 노래 탓도 있었나봅니다. ‘또 하루가 갑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울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사랑을 당신 가슴에 담아요/ 증오가 자라나게 놔두지 않을 것임을/ 세상에 알리기 원한다면/ 조그마한 사랑을 당신 가슴에 담아요’(풋 어 리틀 러브 인 유어 하트)

서둘러 스피커를 끄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내 눈물의 두께를 재봤습니다. 이맘때면 신문마다 ‘불쌍한 아이들’을 등장시킵니다. 얄팍한 눈물을 재촉합니다. 그리고 성금이 답지한다는 속보가 나옵니다. 자선과 기부가 잇따르는, 얼마나 훈훈하고도 얄팍한 세밑입니까.

동정이 인류란 종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행위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린이·청소년은 동정을 받아야 할 의무도, 자선에 감지덕지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은 단 0.001%도 그 가난에 책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생존과 발달, 비차별의 권리(유엔 아동권리협약)를 가질 뿐이며, 그 권리의 충족은 유엔이 부여한 각 국가의 의무입니다.

삶을 준비하는 배움과 성장의 단계에서, 양지마을 은경(15·가명)이는 한달을 8만원으로 살고 강남지역의 또래는 그 10~20배의 돈으로 산다면, 이는 헌법이 금하는 ‘계급적 불평등’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200만원짜리 생활을 줄일 필요는 없습니다. 8만원짜리를 끌어올리면 됩니다. 그 좋다는 ‘상향 평준화’입니다.

재정 부담요? 아직까지 저는 얼마의 예산이 들고 이를 어떻게 마련할지 살피는 가장 초보적인 학구적 노력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종합부동산세 논란만 있을 뿐입니다. 치료비 없는 어린 환자들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거나 빈부를 떠나 똑같은 경쟁 조건을 마련해주자고 주장하는 아동복지학자나 시민단체도 보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사회적 담론에서 버려져 있고, 당연히 생활에서도 버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얄팍한 눈물을 거둡니다. 대신 상향 평준화의 세상을 모색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름하여 ‘어린이 사회주의’입니다. 색깔 시비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시장경제 최고 원칙인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의 미래를 말하는 겁니다. 커서 ‘굿네이버스’에서 또는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센터에서 일하고픈 가난한 아이들이 너끈히 꿈을 이루게 말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겁니다/ 모든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겁니다/ 당신에게도/ 내게도…’(〃)


박용현 24시팀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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