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베이징 특파원
편집국에서
“체조 남자단체 결승전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중국이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일본에 1.5점이나 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금메달이 확실했다. 기자들은 큰 기삿거리가 생겼다는 양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일본의 마지막 선수는 당찬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이 일본을 역전하는 순간 기자들은 낙담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경기대회가 사흘째 되던 날, <남방일보>라는 중국 신문에 실린 기사 한 토막이다. 중국 체조선수들이 막판에 판세를 뒤집어 금메달을 땄는데도, 중국 기자들이 좋아하기는커녕 기분을 잡쳤다는 것이다. 처음엔 일본 기자들의 표정을 꼬집은 기사인 줄 알았다. 기사 제목을 보고서야 그게 아님을 알았다. 제목은 ‘중국이 금메달을 못 따야 뉴스’였다. 금메달 하나 따려고 혼신을 다하는 다른 나라 선수들이 봤으면 복장이 터질 일이다.
아시아 경기대회를 전하는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 낱말이 ‘독고구패’(獨孤求敗)다. 개막 첫날부터 독주하는 중국의 위세를 진융(김용)의 무협소설에 나오는 인물인 독고구패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독고구패는 이름 그대로 ‘자신을 이겨줄 적수’를 찾아 무림을 종횡했던 절대고수다. 진융이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여러 고수 가운데 최고로 꼽았다는 이다. 중국은 지고 싶어 죽겠는데 그렇게 해줄 적수가 없다고 한탄하는 셈이니, 조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중국인들이 보기에 아시아 경기대회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면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롯해 광둥·랴오닝·장쑤성 등 다섯 곳 선수단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중국 언론들은 이들을 ‘5대 강자’라 부르며, 이들의 쟁패에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아시아 경기대회에선 중국과 일합을 겨룰 적수가 없다. 한국과 일본이 있다지만, 이들은 중국인들에겐 기껏해야 2위를 다투는 고만고만한 상대일 뿐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까 중국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고도 욕을 먹기 일쑤다. 텔레비전 해설자들은 금메달을 딴 선수의 기록이 좋지 않으면 “저것은 금메달이라고 할 가치가 없다”고 매몰차게 깎아내린다. 사격과 수영 선수들이 그런 채점관들의 희생양이 됐다. 중국은 사격에서 모두 금메달 27개를 땄지만, 선수단장으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서 적어도 8등 안에는 들 성적을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16개의 금메달을 딴 수영 선수들도 대부분 연습 때보다 기록이 나빴다며 호된 질책을 들었다.
중국의 아시아 경기대회 경시는 육상 스타 류시앙을 다루는 데서도 알 수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허들 11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류는 경기 일정과 상관없이 수많은 기자들을 몰고 다닌다. 신랑이나 소후 같은 포털 사이트에선 아예 그의 이름을 박은 항목을 따로 만들어 운영할 정도다. 그 안에 들어가면 류 같은 세계적 선수를 아시아 경기대회에 내보낼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적지 않다. 아시아에 적수가 없으니 그에 맞춰 선수를 내보내야 한다는 논리다.
중국 선수들이 도하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동안, 중국에선 수천년 동안 중국의 상징으로 써 온 용을 다른 것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영어로 드래건으로 번역되는 용이 서양에선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괴물로 비친다는 한 홍보전문가의 주장이 발단이 됐다. 이 주장은 중국에서 용은 화합을 이끄는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거센 반론에 부닥쳤다. 그런데 도하에서 중국은 용보다는 드래곤을 닮았다.
유강문/베이징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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