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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지금 압구정동에서는 …

등록 2006-12-13 18:35수정 2018-05-11 14:49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칼럼
일요일밤에 방영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서울 압구정동에서는 어떤 패션이 유행인지를 보여주는 꼭지가 있다. 보통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입고 나와 폼을 잡으면 꼴불견의 의상을 차려입은 개그맨들이 튀어나와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작살낸다. 그러면서 지금 압구정동에서는 이런저런 패션이 유행이라고 일갈한다. 보통 사람들은 압구정동이라는 말 한마디에 자신의 멀쩡한 옷차림이 갑자기 초라해 보이는지 풀죽은 모습이 된다.

코미디고 과장된 우스개지만, 큰소리로 뻔뻔하게 우기면 그게 진실처럼 보이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종합부동산세를 둘러싸고 압구정동으로 대표되는 몇몇 아파트들과 일부 언론, 무슨 ‘오른쪽’이라는 단체들이 납세거부 운동을 벌이며 목청을 높이는 것도 이와 아주 닮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압구정동 아파트는 기준시가가 전부 6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실거래가는 15억원 이하가 없다는 것이 부동산 업소의 말이다. 1가구 1주택이라도 모두 종합부동산세가 나왔다는 이야기다. 종부세 자진납부 마감일을 앞두고 아파트 들머리마다 공고가 붙었다. 입주자대표회의 이름으로 ‘종부세를 내지 말자!’, ‘위헌소송 등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전체적으로 일괄해결을 할테니 단체행동에 들어가자!’는 내용이다. 자진납부하면 나중에 혜택을 못 받을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며칠 뒤 이번에는 다른 쪽에 국세청장 이름의 공고가 붙었다. 자진납부해서 불리하다는 것은 거짓이라며 납부를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부터 아파트의 경비원들이 바빠졌다. 드나들 때마다 ‘서명해 주셔야겠는데요’라며 쪽지를 내민다. 자진납부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에 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경비원들에게 빨리 많이 서명을 받아오라는 지시가 내린 것 같았다. 어제 보니 국세청장 명의의 공고문은 일제히 사라졌다. 대신 입주자대표회의 이름의 공고가 하나 더 붙었다. 13일이 서명 마감날이니 빨리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면서 서명을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아파트에 사는 친지에게 물어보니 경비원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서명을 받는 곳도 있는 모양이었다. 주민들의 반응이 열화와 같지는 않은 것 같았다. 조세저항을 부추키는 쪽에서 세력을 모으는구나 싶었다.

지난 몇 해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의 값 폭등을 보면서 로또당첨이 따로 없구나 하는 심정이 들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주변에 그 사실을 감추는 것처럼,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아파트값의 상승을 남이 알까 두려워 숨죽여 지냈다. 종합부동산세 내역을 살펴보았다. 시세에 훨씬 못미치는 기준시가가 적용되었고 그동안 재산세 낸 것도 빠졌다. 예상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었다. 얼추 계산해 보니 일년 열두 달의 관리비를 합친 정도였다. 외제차가 즐비한 창밖을 내다보면서 교통 편하고 여러모로 편리한 곳에 사는 거니까 관리비를 갑절로 내는 셈 치자고 생각했다.

종합부동산세가 나온 가구는 전체의 1.3%인 23만가구다. 그 가운데 1가구 1주택은 30%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전체가구의 0.4%가 1가구 1주택으로서 미실현 이득에 세금을 내는, 조금은 억울할 수 있는 가구들이다.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고 딱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집값 오른 것에 견주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20억, 30억원짜리 아파트에 앉아서, 세금 낼 능력이 없다, 중산층의 목을 죄는 정책이다라고 큰소리를 치는데, 과연 우리나라의 중산층이 0.4%에 불과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낮에 빨간 내복 차림으로 ‘이게 첨단의 유행’이라고 우기며 고궁을 산책하는 개그맨들을 보는 것 같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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