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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어느 무주택 기자의 넋두리 / 박중언

등록 2007-01-02 17:12

박중언/도쿄 특파원
박중언/도쿄 특파원
편집국에서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았군. 귀국 준비의 최대 골칫거리는 역시 집이야. 애 둘 둔 40대 중반의 무주택자이니. 2007년 대한민국에선 무능력자나 다름없는 말이지.

가만 보자. 언제부터 집하고 인연이 엇갈렸지? 1988년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다. 절친한 친구 어머님께서 나를 볼 때마다 청약저축에 가입하라고 노래를 부르셨던 기억이 나네. 당첨만 되면 값이 두 배로 뛴다는 ‘뻥튀기론’이었어. 아파트값 폭등으로 200만호 건설 어쩌고 하기 직전이었지. 그때 귀담아들어야 했는데. 겨우 운동권 주변부를 어슬렁거린 주제에, 대다수가 내 집을 장만한 뒤에나 집을 가질 거라고 호기를 부렸으니.

95년 결혼 직전에 전세난에 떼밀려 25평형 아파트를 샀지. 그땐 집값이 미동도 않던 시절이었잖아. 전세금과 집값이 엇비슷하니 부담도 별로 없었지. 잠자던 부동산이 꿈틀대던 2001년 중반부터가 문제였어. 나도 ‘평수를 넓혀간다’는 평균 수준의 부동산 마인드로 무장은 했는데, 작은 집을 팔고 33평형에 몇 차례 입질을 했지만 실패했지. 큰 흐름을 놓친 채 눈앞의 잔물결만 보느라 너무 쟀어. 사려던 집의 값은 가파르게 올라 두 배까지 치솟아버렸고.

2003년 말 특파원 부임을 앞두고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지. 집은 사놓고 떠나라는 주변의 권고를 뿌리치고 ‘도박’을 감행했지. 부동산만은 잡겠다는 정부가 미더웠던 것은 아니었어. 돌아올 즈음이면 시장이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겠지 하고 기대한 거였지. 근데 그 집은 또 두 배로 뛰었으니, 젠장!

정부는 ‘물태우’ 때보다도 신통찮았어. 울분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그렇다고 부관참시까지 당한 정부에 돌멩이 하나 더 던져 뭐 하겠나. 다만 경제관료들한테는 한마디 해야겠다. 부동산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 ‘나무는 보되 숲은 못 보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경제가 숲이라면 집에 저당 잡힌 사람들의 마음은 숲이 뿌리내린 대지야. 대지가 타들어가 쩍쩍 갈라지고 있는 게 안 보이나. 시장은 완벽히 실패했어. 자유시장론자들이 예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어디 있어. 사재기와 ‘돈 놓고 돈 먹기’가 판치는데.

정부와 시장만 욕할 수는 없지. 광풍에 휘둘려 집에 ‘올인’하려는 사람들, 피해자인 동시에 ‘공범’ 아닌가? 확실한 실수요자인 나도 물론이고. 거품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부동산 시장에 안테나를 고정시킨 채 대기하고 있으니. 지금이 아니면 내집 마련, 평수 넓히기가 불가능할 거라는 절박감이 크긴 커. 전세불안도. 그게 광풍의 에너지원이지. 근데 솔직히 자신에게 물어보자. 정말 주거가 걱정돼 이러나? 집값 폭등의 혜택에서 완전히 소외될까봐 조바심치는 거 아니야?

요즘 부동산 광풍이 대형 화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 먼저 살겠다고 발버둥칠수록 함께 사는 길은 멀어진다는 점에서.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일본에 있으니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여긴 은행에 돈을 넣어둬도 이자가 거의 없어. 월세도 비싸고. 그래도 사람들이 내집 마련에 안달하지 않잖아. 도쿄의 자기집 보유 비율은 고작 48%야. 이유가 뭘까? 집값이 이젠 신화가 아니라는 거지. 집도 감가상각이 되는 내구소비재의 하나라고 여기는 거겠지. 지금 우리의 혼란도 이런 인식이 뿌리내리는 과정의 성장통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과정은 숱한 마음고생을 요구하겠지. 그까이꺼 ‘고난의 행군’을 좀더 하지. 반값 아파트 운운하고 있으니 조금은 나아지겠지. ‘미련한 선택’에 한번만 더 따라달라고 가족들에게 부탁해야겠다. 그동안 고집 부린 데 대한 용서와 함께.


박중언/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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