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24시팀장
편집국에서
일찍이 조지 오웰이 고발한 바 있는 ‘나폴레옹’ 같은 독재 돼지는 쫓겨났건만, 동물농장의 권력은 여전히 돼지들 손에 있다. 돼지들은 그 사이 공화정의 상징으로 목살 부위에 손톱만한 낙인을 찍었는데, 무슨 꽃잎 모양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농장 한가운데 분수대로 치장된 널따란 마당이 이들의 거처. 그곳 본채에서 여물통을 꿰찬 무리는 ‘여돈’이라 불리고, 본채 밖에는 ‘야돈’(들에 사는 돼지)이 산다.
마당 가까이 자리잡은 고층의 양계장은 닭들의 집인데, 얼마 전 풍미한 ‘아파트 인플루엔자’(AI)에 걸린 바로 그 닭들이다. 나머지 풀먹이동물들은 종일 땅을 일구거나 풍차(‘나폴레옹’이 짓기 시작한 그 풍차) 짓는 일을 한 뒤, 이슬을 덮고 잔다. 겨우 노동을 견딜 먹이만 주어져, 새끼를 튼튼하게 기를 젖도 벅차다.
이 농장에 얼마 전 한바탕 소란이 있었으니, 풀먹이동물들이 떼로 모여 돼지들을 나무란 것이었다. 돼지들이 이웃의 커다란 쌀농장과 울타리를 트기로 한 게 발단이었는데, 그러면 쌀이 더 풍족해진다고는 하지만 돼지·닭들이나 먹게 될 터. 풀먹이동물들은 오히려 힘센 들소나 퓨마 따위가 밀려들 게 걱정이었다.
그날, 개떼(‘나폴레옹’이 기른 그 사나운 개들의 후예)가 풀먹이동물들을 덮쳤다. 평생 발굽이 닳도록 일한 늙은 소·말·노새에게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이 으르렁댔다. 한편에선 개들이 마소를 잡아 헛간에 가두려는 걸 염소 영감이 뜯어말렸는데, 개들은 염소 영감에게 시끄럽게 화풀이를 해댔다. 개 짖는 소리로 농장은 아직도 시끄럽다.
그보다 문제는 풀먹이동물 편을 들던 돼지가 지금은 없어졌다는 것. 예전엔 야돈 중에 늘 풀만 먹으며 돼지이기를 거부하는 부류가 있었으니, 이들은 야성이 살아있고 배고픈 지사의 풍모마저 지녀, 우제류에서도 사슴과나 소과에 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이십년 전쯤부터. 그해 여름 여돈의 폭정에 못이겨 동물들이 들고 일어났다. 어린 사슴들이 피를 흘리기도 한 큰 싸움이었다. 야돈이 그 여세를 몰아 본채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놈들은 야성을 점차 잃어가더니 어느덧 배부른 돼지로 변해가고 만 것이다.
그럼 본채 밖으로 밀려난 돼지들은? 불행하게도 이놈들은 배고픈 지사로 거듭나기보다 그저 배고픈 돼지로 남기를 택했다. 정체성을 굳게 지킨 것이다. 늘 코를 그릉대며 여물통만 훔쳐볼 뿐, 여전히 풀먹이동물들은 안중에 없다. 양계장의 닭 정도가 이들의 친구랄까. 그런 탓에, 풀먹이동물들에게 나눠줄 양식을 여야가 손잡고 대폭 깎아버리는 일이 지난 연말에도 되풀이됐다.
이제 풀먹이동물들은 차라리 여야가 다시 바뀌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옛날처럼 여돈과 개들의 핍박에서 자기들을 보호해줄 야돈이 몇마리라도 있어줬으면 하는 벼랑끝 바람이랄까. 그러나 누가 장담하랴. 지금의 여돈이 여물통을 놓는다고 다시 배고픈 지사로 돌아올까? 지금의 굶주린 야돈이 다시 여물통을 차지하면, 농장의 삶은 그 옛날 팍팍함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개들의 사나움은 더욱 극에 이르러 동물들은 또 숨죽여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농장의 토양은 그러잖아도 거칠어져 기러기들은 일찌감치 새끼를 다른 농장에 보냈고, 참새든 뱁새든 농장을 뜨고 있는데, 날개 없는 풀먹이동물들은 이 밤도 답 없는 여야 교체 퍼즐을 잡고 끙끙대다 잠이 든다. 가련한 몸뚱이들 위로 이슬이 내린다. 멀리 본채에서 이어지는 돼지들의 황금돼지해 축하연 소리만 아련히 들려온다. “돼지 공화국 만세, 개·돼지 민주주의 만만세!”
박용현/24시팀장 piao@hani.co.kr
박용현/24시팀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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