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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혼자 가는 길이어선 안 된다 / 여현호

등록 2007-01-09 17:15수정 2007-01-09 18:04

여현호/국내부문 편집장
여현호/국내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대통령 특별담화 예고 소식을 들었다. 다소 느닷없다. 오전 11시 반, 텔레비전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개헌 문제를 논의해 보자는 ‘제안’ 수준이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고자 한다”는 ‘발표’였다.

헌법에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회에서 투표로 이를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제 앞으로 몇 달 동안은 꼼짝없이 개헌 정국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작든 크든 정국이 소용돌이칠 수밖에 없게 됐다.

노 대통령은 “결코 어떤 정략적인 의도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누구보다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87년 체제’의 대표적 산물인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를 시대적 요구에 맞춰 고치는 게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가 취할 행동이 이것 말고 달리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물론, 사람들 모두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다. 당장 한나라당의 반응이 부정적이다. 한나라당 압승으로 굳어져가는 듯한 대통령 선거 구도를 뿌리째 흔들어보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게 야당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노 대통령은 대단한 정치고수이고, 개헌 제의는 “꼼수 정치”(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노 대통령의 뜻은 성사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정치공학 차원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노 대통령 임기내 개헌을 거부하면 개헌논의의 ‘약효’는 크게 떨어진다. 반대로 야당 내의 견해차로 개헌정국이 급격하게 불붙을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또다른 강수’로 상황 전개를 재촉할 수도 있다. 이것만이 변수일까?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두고서는 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이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그래서 개헌 논의의 토양은 좋은 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2005년 7월 <한겨레> 조사를 보면, 국회의원의 90% 이상이 권력구조 개헌에 찬성한 반면, 일반 국민 조사에선 반대(47.9%)가 찬성(40.8%)보다 많았다. 지금은 또 바뀌었겠지만, 어떻든 온도차가 난다는 얘기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국민들이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국민들이 개헌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개헌론은 갈수록 힘을 잃게 된다. 이 경우, 개헌론을 둘러싼 논란은 좀 시끄러운 정치공방에 지나지 않게 된다.

노 대통령이나 그 지지자들로선 듣기 거북하겠지만, 노 대통령이 개헌론 깃발을 든 것 자체에 거부감을 보일 국민들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개헌에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노 대통령의 전격 발표로 시작된 개헌논의가 얼마만큼의 추동력을 가지게 될 것인지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좋은 이야기도 노 대통령이 거론했다고 하면,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이런 사정을 찬찬히 살펴보고 개헌 방침을 밝혔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여러 정황을 보면 열린우리당의 지도부나 친노 의원들도 노 대통령의 발표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노 대통령 혼자 결심한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겨레>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임기 말에 정치에서 손을 떼고 국정에 집중한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전임자의 충고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혼자 가는 길이 힘들지 않을 리 없다. 무리수가 따르게 된다. 걱정되는 점이다.

여현호/국내부문 편집장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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